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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숙의 행복아카데미

아빠들이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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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교환교수로 미국 매릴랜드대학 근교 주거지에서 일 년을 살았다. 당시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것은 오후 서너시만 되면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공원(크기가 축구장 보다 넓고, 거의 잔디로 조성 되었고 벤치와 놀이터도 있는)에 나와 함께 공도 차면서 아이들과 노는 풍경이었다. 작은 아기들은 물론 아빠들이 아기띠로 메고 있었다.

아니면 아이들의 체육활동 참여를 위해 그들을 라이드해서 데리고 와 내내 지켜보는 가족에서 아빠가 안 보이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 후 더 놀라운 것은 나와 함께 미국에 간 중2 아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아버지들이 방과 후 클럽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 테니스, 농구, 달리기, 글쓰기 지도 등에서.

20년도 넘는 지난 이야기다. 그 후 내가 눈여겨 본 한국 남성들의 생활시간은 거의 일에 중독된 스케쥴을 가지고 있었다. 7,8시경 출근해서 밤 10,11시경, 심지어는 매일 술을 먹곤 2,3시경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정말 일이 그리들 많을까? 일찍 집에 오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심리는 무얼까? 50대 상사들이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으니? 그래서 4,50대 남성사망율이 세계 1위이지. . 등등 별 의문들이 나오곤 했지만, 결국은 ‘한국의 직장문화’와 ‘남성들의 성역할’에 귀결되었다.

회사는 근로시간 내에 업무를 다 처리할 만큼 적정 근로자수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생계부양자라는 남성근로자들은 초과 수당에 목 맬 수밖에 없는 환경(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되는 심정)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 한국은 직무가 근로시간에 처리되는 경향이라기 보다는 저녁의 술자리에서 결정되는 업무방식이 흔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남성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들이 죽자살자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성역할론에 매몰되어 있었다 - 때론 그게 자신의 정체성을 담보받을 수 있는 것이러고 생각하는지? 근로자- 기업- 그 위에 가정의 안위에 무관심한 국가가 함께 삼박자로 남성들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고 그건 드디어 ‘인구문제인 저출산’으로 표출되었다.

‘워라밸(WLB, Work &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은 근로자들의 건강한 삶(생활, 가정생활 다포함)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업의 생산성도 향상시키기 어렵고, 사회가 도달하고자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도 어렵다라는 자각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고용, 경영분야에서 먼저 언급되었고 드디어는 여성, 가족 분야에까지 그 구체적 실천이 건의되었다.

우리나라도 기존의 ‘남녀고용평등법’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법명은 균형 대신 양립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균형까지 도달하기엔 어렵다고 여겼든지...)으로 바뀌면서 구체적으로 일터와 가정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정부, 기업의 역할과 제도 등을 제시하였다.

법 조항은 있지만 실현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육아휴직, 가족돌봄, 근로시간 변경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법 조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통적 남성상에서 우리 모두가 벗어나는 것이었다 - 기업주이든 근로자이든, 2010년경 부터 구.군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아버지 교실’이 열리고, 페미니즘을 공부한 남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남편상, 아버지상에 대한 토의들이 등장하더니, 드디어 ‘아이는 아빠 엄마가 함께 키운다’라는 광고 카피가 나오더니, 최근엔 ‘아이가 자라듯 아버지도 자란다’는표현까지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아버지들이 가정으로, 육아현장으로 귀환하고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업고 청소기를 돌리는 남성’이 쪽 팔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새로이 등장하는 신개념의 워라밸 아버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건 남성 개인에게도 행복한 변화이지만 한 가정에도 엄청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모습이다. 이제 남은 일은 ‘아이는 온 마을이 힘을 합쳐 키운다’라는 진리를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이다. 출산율이 올라 갈려냐?

[2019123일 제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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