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삶을 성찰하는 기회가 사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일기’를 늘쓰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반성과 후회가 조금씩 연습된다고 한다. 비록 그 후회들이 지극히 개인적 일에 국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조금 더 참을 걸’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오해를 한 것일 가’ 등의 작은 사고(思考)들은 그를 큰 규범적 선(善, 인간적 도리)에서 크게 빗나가게 하지는 않는다.
어르신들 대상으로 ‘자서전 쓰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개개인이 살아온 삶을 먼저 풀어내게 한 다음, 반드시 스스로의 삶을 평가해보라고 권한다. 그런 평가의 언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반성, 후회, 사과 등’의 언어이다.
그럴 적에 나는 그 감정들이 정말로 진심인가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들으려고 하고, 그 분의 진심이 느껴질 때에는 크게 공감해 드린다. 그리고 스스로가 반성하는 그 지점에서 ‘당신 때문에 상처 받은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어 본다.
대체로 자녀, 부모, 배우자, 친구들이 그 대답에서 등장한다. 그러면 돌아가시기 전에 그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을 드리면, 그들은 ‘사과하고 싶다’고 한다(실제 사과 정도로 그 잘못이 바로 잡아 질런지는 둘째로 하더라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그자체가 나는 그 분이 ‘정의’를 안다고 본다).
못 배우고, 크게 잘난 척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이럴 진데,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때로는 ‘불가피하였다’라는 정도로 어떤 행위를 시민 개개인들에게 행사하였고, 그래서 그 개인들이 아픈 삶을 살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가지도자는 그 진상을 파악한 후에는 그 개인들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법정신도 아니고 정치 전략도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리’이다.
영화 ‘1987’는 국가 조직의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고발한 영화이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고발되고, 표현되고, 비정의를 널리 알리고, 이제사 공개되는), 열린 의식으로 그 영화를 보면서 한 시민으로 그들의 고통과 죽음에 함께 하며, 다시금 새로운 정의로운 정치가 이 땅에서 펼쳐지기를 누구나 다시 바라고 바라게 된다.
물론 그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게 된 배경에 정의를 실천하려는 일부 시민적 자각이 부분적이나마 있었음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정신대 할머니’들이라고 불리어지는 종군위안부 여성들은 식민지 상태에서 잔혹한 삶을 살았던 희생자들이시다.
그들의 증언과 그들을 심층연구한 학자들의 보고서 등에서 우리는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던, 그 분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무한한 사과를 해야 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소시민으로 우리는 ‘마음 보태기’ ‘헌금하기’ ‘수요시위 참석하기’ 등으로 작게나마 사과라는 의식에 다가가고 있는 정도이다. 그게 일개 시민인 우리가 가지는 정의로운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정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반드시 공적 정의로 변환되어야 한다. - 일본이나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그 기억과 그 속의 정의로움을 찾으려는 일에 더 노력하기를 바란다. 정의의 역사가 살아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2018년 1월 26일 제96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