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 키우기의 또 한 가지 방법은 가끔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음악회 가기, 미술관 혹 전시장 가기, 그림 그리기, 현란한 현대무용이나 발레 관람가기, 영화 혹 연극 보기, 스스로 멋진 운동복을 입고 달려 보기, 노래 부르기등 등은 스스로를 미숙하지만 작은예술가로 착각하도록 하면서, 어느새 자신을 멋진 교양인으로 높혀 주어, 종내는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술(藝術)은 다양한 기초교양(음악, 미술, 몸의 움직임(체육, 무용), 쓰기 등)을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저들은 초중등 학교교육에서 약간씩 맛만 보고 나왔습니다. 저는 피아노를 칠 줄 모릅니다. 다른 악기도 물론 다룰 줄 모릅니다.
월급쟁이 부모가 6형제를 키우면서 하나하나 예능 교육을 시키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죠. 저는 대신 음악 감상, 노래 부르기 등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오페라교실, 가곡 교실을 출입하면서 가끔 그 멋진 음율, 대사(가사), 연출 등에 탄복하면서, 두서너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옵니다.
그러나 멋진 아리아를 부르고 싶다거나 악기를잘 다루고 싶다는 꿈은 없습니다. 그 숙련된 전문가로 가는 수고보다는 교양인의 수준에서 머무는 저가,그런 저가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6년째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요가 선생님께서 권하는 요가에 관한 책, 음악을 통해 제가 모르는다른 세상을 듣고 배우는 것이 참행복한 시간임을 느낍니다.
어떤 경지에 올라가고픈 생각은 없습니다만, 진정한 요가인이 되어 세상만사를 다 비우고, 버리는 그런 호사스러움을 언제 가질려냐 하고 기다립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은 먼저 우리의 심미감을 건드려 본능적 쾌락(즐거움)을 줍니다.
그 색감, 그 선율, 그연출, 기가 막히는 대사 등은 즉각적 매혹을 넘어 나의 마음(정서, 감정)를 만져줍니다- 정서적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나아가 그런 인간의 비극, 희극을 다양하게 알려주는 그 예술들은 나를 더욱 성숙시킵니다.
작품 속의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인생사건들 속에서 다시 감지되는 삶의 원리, 윤리, 철학 등은 나를 고양시킵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잠깐의 예술 감상에서-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무심히 우리는 행복감에 젖어듭니다.
최근 ‘니체(1844년-1900년)’의 ‘짜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1883년에 출간된 이 책은 21세기인 지금도 제 마음을 울리는 내용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텍스트로 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년-1949년)’가 교향시 ‘짜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하였답니다.
이 음악을 선생님이 성능 좋은 음향기로 들려주는 순간, 그 첫 음절에서부터 베토벤이나 바그너는 제마음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 듣던 새로운 음악에 제 마음이 확 열리면서, 저는 순간 행복했습니다.
바쁘다거나, 시간이 없다 등의 이유로 우리는 주위에 늘려져 있는(무료든 유료든) 예술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에너지의 일부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큰 돈 안들이고 크게 시간 뺏기지 않으면서 참여하는 것이 전시회나 음악회를 가 보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이만들어 내는 고도의 기예적(art의 원래 의미는 기교적이란 뜻이랍니다) 활동들은, 예술가들은 온갖 고통 속에서 창작해 내지만 단지 보고 즐기는 저들에게는 행복감만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감을 고양시키는 한 방법으로, 자주 전시관이나 음악회를 찾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고통, 스트레스를 버리고, 새로운 교양인으로 거듭나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자주 가져보길 권합니다. 한 때, ‘1만원의 행복’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오로지 내 자신만을 위해 만원을 쓰는 것도 작은 나만의 행복한 행위입니다.
[2018년 6월 22일 제101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