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식은 어린 시절이어서 그 졸업(마침)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몰랐다. 중학교 졸업도 많은 친구들이 그대로 고등학교로 이어 올라갔기에 졸업이 나의 삶에서 어떤 이정표를 찍는 사건과 의미로 다가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은 좀 달랐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에 들어선 나이이기도 했지만, 이젠 이 교문을 나서면, 다시는 이런 학창시절(즐겁고 명량하였던 여고시절?)이 오지 않는다는 느낌은 좀 다른 안녕을 고하여야한다는 의지를 불러 주었다.
그래서 졸업식전, 친구들과 교정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마음에, 눈에다 담아두고 싶어서), 함께 돌려가면서 글을 적는 공책놀이도 하였다. 한 번의 쉼(자신을 성찰한 시기)도 없이 시작한 대학과 대학원 생활은 외국어(불어, 일어까지)공부, 책 읽기, 동아리, 알바이트(과외지도) 등으로 채워졌다.
도시락을 싸들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선, 종일 강의실과 도서관을 왔다갔다 하다가, 저녁에는 과외선생으로 여고생들과 재미난 시간을 가지고 귀가하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즉시 대학선생으로 취업이 되었고, 결혼할 사람까지 대동한 채로 나는 당당히 캠퍼스를 떠났다.
이후 한 번씩 학교를 가보면, 나의 찬란하였던 20대가 머문 장소로 그 캠퍼스는 손색이 없었다. 나는 학생 시절을 지나, 새로운 어른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30대의 삶은 출산과 양육, 그리고 가르치기 위해 밤낮없이 전공 공부를 심화하는데 다 바쳤다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뭔 공부를 그리 할꼬...’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30대는 흘러갔다. 그리고 40대 입문과 함께 나는 ‘여성운동’하는 교수가 되어버렸다. 지역에서 40여년을 살아 나름대로 폭넓은 관계망을 가지고 있고, 대학교수로 인적 자원 연결이 수월하였다.
많은 교수님들과 함께 지역에서 열심히 시민운동과 여성운동을 한 나의 4,50대는, 되돌아 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소명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65세, 정년퇴직을 하였다. 퇴직은 다시 한번 나의 인생을 변화시킨 큰 변곡점이었다.
퇴직준비를 하면서, 나의 40여년간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고, 향후의 삶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당당하게 안녕을 외치며 미련없이 제도권 교육현장을 떠났다. ‘남은 것들은 남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저는 다른 삶을 찾아 갑니다!’라는 마음으로... 정년을 하고 벌써 3년이 흘렀다.
내 앞의 남은 삶을 바라보니,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아 있고, 뭘부터 하면서 지내야할 것인가 대한, 또 하나의 계획이 필요하다. 앞으로 평균하여 20여년 남은 내 인생의 마지막 안녕을 꿈꾸며.....마지막의 당당한 안녕은 아마도 나의 ‘죽음’으로 맞이하리라.
가능한 건강하고 행복하게, 또 겸손하고 인자하게 지내야 하겠지만, 그마지막 안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후회없이, 두려움 없이 맞이해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노년기의 그 당당한 안녕을 준비하기 위해서나는 ‘당당한 안녕(2017, 산지니)’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내 스스로를 다독거리기 위한 글들이 었지만, 또래의 친구들도 자신의 마지막 안녕을 처절하고 불쌍하게 맞이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먼저 손 내밀면서 잡아당기는 그런 모습을 만들면 좋겠다 싶어 쓴 글을 책으로 출간하였다. 내 인생의 마지막 안녕도 나는 당당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2018년 11월 19일 제106호 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