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창원지법시절 소년사건을 다루며 감동의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직접 펴낸‘아름다운 이야기들’(왼쪽). 이후 이 소책자 내용을 더 보완해 다양한 사례중심의 이야기들을 엮은책,‘아이야 우리가 미안하다’(오른쪽)가 지금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청소년들의 문제나 소년사건은 그야말로 30년 뒤를 보고 묘목을 심는 심정으로 해야합니다. 자기들 눈높이에서 귀를 열어주려 애쓰니 작은 변화들이 보였고, 오히려 팬이 되어주는 소년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치유와 회복의 따뜻한 처분이 필요한 대상자들이란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자나 깨나 소년 생각뿐이라는 뜻에서 '만사소년', 겁 없이 범죄를 저지른 철부지 소년범들에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통을 치는 '호통판사', 법정에서는 누구보다 매섭지만 재판과정에서 만난 소년 범들을 위해 누구보다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상처를 보듬고 회복을 돕는데
팔을 걷고 나선 '소년 범들의 아버지', '천10호 선장', '바보', 가사소년전문법관 등 천종호
팔을 걷고 나선 '소년 범들의 아버지', '천10호 선장', '바보', 가사소년전문법관 등 천종호
(48)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훈장처럼 따라다닌다.
유명세만큼 팬들이 늘어나면서 하나둘 붙여진 별명과 애칭들이다.지방의 작은 법원소속 그것도 법조계 비인기 분야인 소년재판담당판사가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 판사가 되기까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법정에서 만난 소년범들과 따뜻하게 소통하면서 부모의 심정으로 처분을 내리고 사후관리에도 직접 나서 소년범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일에 앞장서왔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창원지방법원에 부임, 소년재판을 담당하게 되자 가난했던 청소년시절과 비행소년들의 딱한 처지가 오버랩 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는 그는 "비행소년들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열악한데 비해 도움의 손길은 너무도 적은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의 해체로 소년비행이 생각보다 더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는 천판사는 "가정의 해체로 보호력이 상실되었거나 약화된 보호소년들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안전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대안가정이 필요함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일이 '청소년 회복센터' 설립이었다. 부모와 가족을 대신하여 보호소년들을 보듬고 훈육하는 일종의 대안가정이자 사법형 그룹홈이다. 이후 소외된 비행소년들의 실상을 알려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동분서주, 비행소년 전문상담교육기관인 '경남아동청소년상담교육센터', 정규학교과정인 '국제금융고등학교 창원분교'설립을 이끌어냈고, 지금까지 11호째 청소년 회복센터를 탄생시켰다.
3년간의 부산고등법원 생활 후 창원지방법원에서 소년사건으로 내리 3년을 채우고 올 2월 25일 다시 부산으로 컴백한 천판사는 부산지방법원에서도 소년재판을 맡게 돼 그야말로 소년재판전담판사가 되어버렸다.
언론에 기고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강연과 인터뷰에 적극 응하는 것도 보호소년들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머물수 있는 청소년 회복센터를 한 곳이라도 더 만들고 대안가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천판사.
그는 "남들은 정치에 목적이 있는게 아니냐, 나서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의도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오갈 곳 없는 보호소년들을 위한 시설마련과 아직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안가정 확대를 위해서라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서라도 알려야겠다"는 어떠한 이끌림과 사명같은 책무에서라고 말한다.
실제 소년범들은 재판과정에서 1호 처분에서 10호 처분까지 크게 소년원, 가정, 대안가정(청소년회복센터)등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곳으로 가기 전 중간단계의 민간아동시설에 해당되는 6호 처분의 경우 전국 10여 곳 중 영남권에는 단 한 곳도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나마 가까운 대전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부산법조계에서도 지난 2009년부터 6호처분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는게 천판사의 설명.
천판사가 지금까지 만난 소년범은 약 6천 여명. 학교폭력보다 성적저하에 따른 가족갈등으로 일탈하거나 절도 성범죄 등 주로 청소년비행사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특히 통계적으로 결손 가정이나 저소득가정 등 가족의 해체에 따른 비행소년들이 많아 가족관계의 회복이 제일 중요하다는 천판사는 "소년범의 경우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이후 이들이 사회로 나왔을 때 성인범이 되고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와 사회가 보호소년들의 회복과 치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천판사의 책, 소년재판이야기를 엮은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사실 그가 창원지법시절 첫 소년사건을 다루면서 함께 공유하고 싶은 아름다운 사례들을 엮어 지인들에게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소년사건과 보호소년 당사자들의 미담사례를 처음으로 공론화 한작업이었다. 이후 경남신문에 그가 엮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연재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법조계의 이미지 쇄신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년사건의 후처리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과 관련정책도입까지 이끌어냈던 그는 비행, 학교폭력, 회복센터이야기 등 총 4파트로 분류한 감동적인 소년사건들을 에세이로 엮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제가 삼남매 아버지거든요. 지금은 9개월이 된 당시 늦둥이를 업고 밤을 새며 원고를 교정보고 짧은 기간 책을 펴내느라 고생도 많았지요. 저를 거쳐간 소년범들이나 그들의 가족, 일면식은 없지만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는 독자들, 그리고 소년원에서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책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는 소년범 들 등 이 책이 누군가에는 큰 힘이 되고 있다니 보람이 큽니다."
해맑고 곱상한 이미지에서 연상되지 않을 만큼 천판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부산 서구 아미동 일명 까치고개로 불리우는 도시빈민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일용직 노동으로 부친이 7남매나 되는 대가족의 생계를 연명하다보니 생활은 늘 곤궁했지만 유독 공부를 잘해 부산대 법대를 4년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다.
"글쎄요. 아마도 청소년기 실제 주변의 일탈 청소년들을 보면서 환경과 처지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가까이에서 체험했기에 소년범들이 남같지 않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역시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소년사건을 접하면서 형식적으로 재판을 못하고 적극 개입해 그들을 제 위치로 돌려놓고 싶었고요."
그러나 적절히 처분 내려 선처해 돌려보내놓으면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오가는 것을 반복하는 걸 보면서 많은 판사들이 무기력함을 느끼기는 게 현실이고, 혹자들은 소년사건의 경우 검사도 없고 아이들 말만 하니, 이보다 쉬운게 어디있나 하겠지만 처분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기에 소년사건이야말로 어느사건보다 신중함을 기해야하는 중요한 재판이라는게 천판사의 신념이다. 그는 소년 사건은 오래 못한다는 통념을 깨고 4년째 전담하고 있다.
대안가정형태 청소년 회복센터 11개소 성과, 영남권 6호시설 추진 노력
‘소년사건’ 인기는 없어도 보람은 커 … 소년범 치유·회복 국가가 나설때
"제헌 60~70년, 그동안 소년사건 관련 수 백여명의 판사들이 거쳐갔지만 제도개선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되풀이되고 있는 소년사건을 접하면서 사건담당자들은 지쳐있고, 정작 법조계 현장에서조차 청소년관리에 한숨만 쉬고 있다"는 천판사는 이제 사회와 국가가 보호소년들을 제대로 돌 볼 수 있도록 관련 법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청소년회복센터를 이탈해 처분이행과 규정을 지키지 않아 또 다른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어느 소녀, 이들이 비행의 막다른 골목에서 정신을 차리고 떠올린 사람이 천판사라니 그는 무섭지만 따뜻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전화호통너머로 진심이 전해졌을터.
차비 한푼 없던 아이가 딴 맘 먹지 않도록 택시로 법원까지 오게 했던 천판사를 지켜본 한 법원 행정원은 제집인냥 천판사의 집무실에서 곤한 잠에 빠진 아이를 보고 천판사의 소년범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고 전하기도 한다.
만사소년, 소년범들의 아버지, 호통판사 등 소년재판 전담 천종호 부장판사의 별칭은 다양하다. 재판장에서는무섭고 엄하지만 누구보다 소년범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온 천판사. 그는 소년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과 관련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청소년의 등불이신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어버이요, 스승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자녀의 비행으로 가슴앓이를 해온 어느 입양부모가 천판사에게 보낸 편지와 화분리본이 그의 집무실 한켠을 지키고 있다.
훌륭한 판결이 훌륭한 사람과 희망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천종호 부장판사. 인기없는 분야에다, 훗날 자녀양육까지 부담을 생각하면 공직에 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사회의 근간이 될 청소년을 바로세우는 일을 위해서라도 천판사는 현역으로 남겠다고 말한다.
대담/ 유순희 대표
[2013년 5월 27일 제42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