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황령산을 찾아나선 길에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찾았던 신비로운 마을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잘못 들어선 길에 지나쳐 가는 길이 아니라 그 마을에 볼일이 있어서 였다. 도심속 뜻하지 않게 만났던 시골의 모습이 정겨워 달리는 차창밖에 한없이 정신이 팔렸던 그 산골짜기 길을 이렇게 다시 찾게 될줄이야.
춘삼월 흐드러지게 한바탕 꽃비가 지나간 자리엔 연초록 순들이 지천으로 반짝거리고, 보기드문 황매화가 담벼락마다 다투어 매달려 길벗과 고운미소를 나누었다. 자연이 바로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옛 산골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다.
마을입구 물만골어귀로 들어서기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신식 아파트들을 좌우로 헤쳐나오기가 무섭게 한창 새로운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지나올 때만해도 갑갑하던 머리가 마을 초입 꼬부랑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들꽃들을 만나고 나니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나지막한 시골집, 좁은 골목길,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숙녀의 모습까지 천천히 눈에 담고 버스종점에 이르렀다.
여성의 자궁형상을 닮았다는 물만골의 상부에서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니 팔로 감싸안은 듯 마을이 오목하게 들어 앉아 있었다. 희뿌연 황사와 미세먼지로 탁한 마을아래 하늘과 이곳에서 보는 하늘은 확연히 달랐다.황령산 북쪽 물만골 중턱에 위치한이 물만골 마을은 행정구역상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속한 자연마을로 동쪽에는 금련산이 위치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유독 사찰이 많다는 점. 황령산으로 이어지는 대로외에는 골목길이 좁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자동차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 출근하듯 이곳에 일터나 작업공간을 두고 매일 찾는 사람들은 산보삼아 물만골을 두 발로오른다.
물만골 마을은 6·25 전쟁 당시 군사기지용 도로 개설과 1953년 방목장이 설치되면서 거주자가 늘어 형성된 곳. 2013년 현재 약 450여 가구 1천여 주민이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외지인들이 많이 흘러 들어왔다. 전형적인 산동네로 물, 공기, 인심이 좋아 아직도 옛시골의 인심이 남아있고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터가 좋아 그런지 성공한 자식들이 많아 후대는 먹고살만 하단다. 동래구 관할시절인 1991년 무허가 주택에 대한 강제 철거 집행으로 주민과의 대립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1999년 2월 주민들은 ‘물만골 공동체’라는 자생 주민 총회를 개최하여 재개발 사업 추진을 공식적으로 중지시켰다.
물만골 공동체는 ‘주민 참여, 주민 자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생 조직과통·반을 통합하여 출범하였는데 물만골 공동체의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2002년 환경부 지정 ‘생태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같은 해 부산광역시로부터 ‘녹색 환경 대상’을 받았다.
마을의 교통수단으로 연제 1번 마을버스가 운행되며, 현재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돗물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고 마을의 대표적 교통수단으로 연제1번 마을버스가 운영된다.
유순희 기자
[2018년 4월 20일 제99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