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고 사라질뻔한 한국전통 누비문화를 복원하고 새롭게 창조하여 독특한 정신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김해자 (사)누비문화연구원 이사장. 그와의 첫 만남은 40여년 외길 걸으며 전통누비 문화의 가치를 온 몸으로 체득해온 그답게 종교와도 같은 믿음과 확신, 그만의 올곧은 의지와 철학이 느껴질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동안 누비문화연구와 제자양성, 정기 회원전, 특별전 위주로 전시를 열어왔던 김 이사장은 대중과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차원에서 지난 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상업적 공간인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고 대중에 선을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비에 대한 교육과 정신문화 설파에 여념이 없는 김이사장은 “몸도 소 우주요, 옷도 소 우주이다. 실과 바늘로 이으며 모든 번뇌를 한 덩어리로 묶어 전체를 하나로 잇는 에너지, 내면의 가치관과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내고 생성시키는 한땀 한땀의 과정은 종교 이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고 역설하며, 일반인도 3년만 누비를 배우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이 누비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전통누비는 누구하나 제대로 연구하거나 맥을 이어가는 장인도 없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신이 깃든 누비문화가 100여년간 맥이 끊긴 것이다.
경북 김천 출생의 김이사장은 중학교 졸업이후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가세가 기울어 고향을 떠나 서울 도봉구에 정착했다. 생계의 버팀목으로 삯바느질을 했던 어머니를 도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 곁에서 익힌 솜씨에 서울의 유명한 바느질집 두어 곳에서 일을 야무지게 배워 자립했고 그렇게 바느질 인생이 시작됐다. 누비를 처음 봤을 때, 혼이 나갈 정도로 매료됐다는 김 이사장은 전통 누비옷 기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쫓아다녔다.
승려복과 출토복식에서나마 면면이 남아있던 전통누비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출토유물이 전시돼 있던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을 스승삼아 부지런히 찾았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드디어 유물 제114호인 전통 누비옷 ‘옆액 주름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유물의 바느질땀 간격은 3mm였지만 김이사장은 2.8mm까지 간격을 좁혀 더욱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한국 누비복식의 맥이 비로소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는 우리의 누비문화 복식 재현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몸과 옷은 소우주, 모든 번뇌 한 덩어리로 엮는 정신수양과정
입는 사람의 건강과 행운기원 한땀 한땀 정성담긴 큰 에너지
“누비는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 등의 충전재를 넣고 옷감 전체를 경사 방향의 세로선으로 홈질, 솜을 넣거나 혹은 솜을 넣지 않고 누벼 계절에 관계없이 사계절 입을 수 있는 게 장점이고, 누비옷은 가볍고 따뜻하며 착용감이 좋아 기능적”이라는 김이사장은 한 땀 한 땀 정성과 정직한 마음씨를 담는 누비는 기능적, 정신적, 장식적 가치를 갖는 우리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거듭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누비옷은 누비간격에 따라 잔누비, 중누비, 드믄누비, 솜의 유무에 따라 솜누비, 납작누비, 누비 형태에 따라 납작누비, 오목누비로 구분된다고 종류를 설명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김이사장 문하를 거쳐간 제자만도 2천여명은 족히 넘고 전문교육과정을 이수한 수료자만 70여명, 전수제자도 16명이다.
2008년에는 누비문화연구원을 설립, 전국에 지부와 정회원을 두고 전통문화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결혼 후 경남 창녕에서 살던 시절 누비장 무형문화재 신청에 번번이 낙마하면서 문화적 가치와 실력, 사회적 기여도보다 정의롭지 못한 이재의 개입에 분개, 당시 창녕출신의 국회의원 후보자였던 노기태 현 강서구청장에게 호소, 선정과정에 공정성이 담보되면서 1996년 그간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비로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고.
보잘 것 없는 촌부의 호소에 귀기울여준 노 청장은 잊을수 없는 은인이라고 말했다. 18년 전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주로 이전, 엄청난 꿈을 갖고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안목없는 정치인들과 현실적인 여러 괴리와 문제들로 인해 삶 자체는 수행의 연속이었다는 김이사장.그는 루이비똥과 같은 최고의 브랜드 최고의 명소를 만들고 싶은게 꿈이다. 누비옷 짓는 체험장과 체조명상센터를 곁들인 공간을 갖춘 ‘누비박물관 건립’이 그의 마지막 소망이다. 세계의 영부인들은 물론 일본의 대표적 디자이너 이세미야끼도 우리 누비옷에 찬사를 금치 못했다는 김이사장.
누비옷의 글로벌경쟁력도 문제 없다고 자신한다. “누더기가 좋아서 일생을 함께 해온 누비의 인연이 누비장이라는 문서를 받고보니 시대적 사명과 책임감도 느껴진다”며 앞으로 세련미와 기능성을 갖춘 누비복식의 현대화와 작업 연구와 함께 복식장르로서도 새로운 연구와 학술적 가치 등 당당히 대접받는 시대가 도래하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손누비문화연구원 054)775-2631
유순희 기자
[2018년 10월 24일 제105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