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의 위력은 대단했다.
영축산 자락 바야흐로 휘감아 타오르는 서리단풍
보다 더 정열적인...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오는 11월 8일 가장 양기
(陽氣)가 좋은 시간,
새벽 3시에 통도요 전통장작가마에 불을 답니다.”
문자를 받은 날부터 마음은 이미 그곳에 먼저 가있었다.
새벽 3시, 봉동에 첫 불을 달고 8~9시간 가량 지나 가마 옆구리 첫 칸으로 다시 불을 옮겨다는 시간이 오전 11시경. 긴 시간 쉴새없이 타오르던 나무가 마디마디 영롱한 보석마냥 차분히 모습을 드러낼 즈음 “불구경 오세요” 며칠간 사로잡혀 있던 상상속의 불꽃들을 실제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국보급 양산사발 완벽재현한 장인의 집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영축산자락 하북면 평산마을에 둥지를 튼 ‘통도요’는 요즘 보기드문 전통 장작가마 작업장을 갖춘 곳이다. 도예가 송암(松岩) 김진량 선생의 혼과 땀으로 빚은 귀한 전통도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원했다는 그 유명한 조선의 ‘양산사발’을 완벽히 재현해낸 곳이요, 민족혼을 되살려 선현들의 지혜를 나누고자하는 장인의 집념과 끈기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느 시골 마당처럼 잡초와 돌부리가 듬성듬성한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마당을 가로질러 측면으로 아담하고 참하게 생긴 도요가 자리잡고 있다.
열을 최대한 가둬놓기 위해 가마를 일직선으로 빼지 않고 살짝 곡선 형태로 틀을 만든 이곳은 송암 선생만의 지혜가 엿보인다.
흙 찾아 13년...본질과 뿌리연구에 몰두
송암 선생이 전통 도자기에 천착한 지는 20여년. 그중 13년은 전국 각지를 돌며 흙을 찾아 다녔으니, 작품활동에 매진한 시간을 셈하자면 여느 도예가보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깊이와 작품성은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있다.
송암의 도자에는 바로 우리 옛도공들의 숨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제대로 하기위해 13년 세월을 우리 전통 흙(백토)을 찾아다녔죠. 본질을 알고싶었고요. 뿌리를 공부하고 싶었죠.
전국 각 처로 흙을 찾아 헤매다니며 때로는 산에서 잠자기도 여러 날이었고, 한(寒)데서의 생활로 기침과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폐가 손상돼 한쪽 폐도 잃었어요.” ‘전통은 곧 고집’이라고 일축하는 송암 선생은 “고집이 없으면 전통을 재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요즘은 베트남산 등 수입산 백토를 비롯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도자기 흙도 많아 편하게 구입해 쓸 수 있지만 전통도자기는 우리의 흙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고집이다.
우리의 흙, 장작가마, 연의 합작으로 탄생
그도 그럴 것이 도자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흙으로 만들었는가이고, 다음으로 전통가마에 우리 땅에서 나는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어야한다고 강조하는 송암선생은 마지막으로 장작가마에 소나무를 땔 때 나는 가마속 연(연기)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가마속 소나무 장작의 연은 가마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도자기들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코팅역할을 한다”며 “도자기를 빚을 때 백토물 사용과 재와 갖가지 자연의 재료로 만든 유약을 입힌 도자기가 가마속에서 열과 연을 만나 오묘한 색채를 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야말로 모든 과정에 바른 정성이 더해져야 온전한 우리 것으로 탄생된다는 것이다. 송암 선생은 “유럽 등 서양도자기의 경우 가공한 색을 입혀 유약으로 빛깔을 내는 방식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는데 비해, 우리 도자기는 흙에서 나는 원색 자연의 미가 돋보이는 생명력있는 아름다움이 백미”라고 덧붙인다.
이렇게 자연이 빚어내는 전통 우리 그릇은 화학적 물질이 가공되지않아 사람의 몸에도 좋고 이로운 그릇이라는 게 송암선생의 말이다. 물을 담아두면 정화되는 원리도, 우리그릇 자체의 기운(에너지) 때문이라는 것.
“전통은 고집” 소신과 양심 해외에서도 통하다
송암 선생은 타 지역의 백토를 양산지역에서 나는 흙 30%와 섞어 국내 최초로 양산창기요 목기형 사발을 완벽히 재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8년 박희곤 감독의 영화 ‘명당’에 그의 작품인 우리 고유의 전통도자기 양산사발 향로 다관등이 극중 중요한 장면에 선보이기도 했다.
올 6월에는 춘사영화제 공로상 수상자 부상으로 송암 선생의 ‘조선백자 철화 달항아리’가 증정돼 시상식에 부름을 받기도 했다. 송암 김진량 선생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왕세자 만수르의 현지 초청으로 방문시, 찻사발을 기증해 왕세자가 소장하고 있고, 영국 부수상은 송암의 작품 애장가다.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고 전통재현에 오롯이 매진해온 송암의 명성이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국보급 그의 작품을 소장하길 원하는 사람도 많다. 그것도 연중탄생하는 소량의 작품 수량에 비례, 그 희소성만큼이나 작품도 귀해 가마를 여는 날은 그의 신작을 만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기도 한다. 그만큼 송암의 작품은 보는 기쁨도 크다.
몸에 좋은 건강한 우리그릇엔 생명력 넘쳐
전통방식을 고집해 그대로 재현내는 일은 자기만의 철학과 소신, 양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랜 세월 사회적 여건과 환경의 변화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우리 땅에서 전통 백토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지역에서 나는 흙의 성질을 잘 활용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사기장들의 역할일 터.
“경기도 광주와 강원도 양구의 경질성 백토와 진주 등 경남지역의 사질성 백토가 주로 많이 나는데, 여러 지역의 흙을 섞어 쓰면 아름다운 색을 내고, 백토를 70%이상 사용하면 ‘자기’”라고 설명하는 송암 선생은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나는 생명력있는 흙을 사용해야 기운(에너지)이 살아있는 그릇이 된다고 말한다.
잡토가 많이 들어갈수록 불에 약하고 내려앉기도 하지만, 사질성 백토가 70%이상 들어간것은 절대 틀어지거나 변화가 없다는 송암 선생. 그가 파는 흙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우리 땅 전통 흙을 고집하는 이유다.
다만 백토는 성형을 할 때 힘이 들긴 하지만 불에는 강해 송암 선생이 이틀 밤낮 불을 달면서도 조바심내지 않고 과감하게 장작을 지필 수 있는 것도 원재료의 든든함 때문이다. 통도요 가마 봉동 옆구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불을 다는 홈이 있다. 지름 20센티미터 남짓될까. 첫메인 아궁이에서 불을 다는 8~9시간은 봉동 전체의 습을 없애는 과정이다.
이후 자리를 옮겨 첫째 칸에서 또 8~9시간, 그 다음 칸에서 3~4시간, 또 그 다음 칸에서 5시간정도 자리를 옮겨가며 연속적으로 불을다는 것은 새롭게 탄생할 자식들에게 옷을 입히는 과정이다. 그러나 불을 다는 시간도 날씨에 따라 변수가 있어 모든 판단은 오로지 오랜경험과 지식을 가진 장인의 몫이다.
일렁이는 볼꽃속 찻사발은 가부좌를 튼 부처
이렇게 칸마다 불의 시간을 달리하는 것은 그릇종류에 따라 가마 위치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제 1칸 찻사발, 찻그릇을 제 2칸에 다관, 제 3칸에 청자, 백자, 달항아리 등의 순으로 자리를 잡는다. 욕심을 내 봉동을 크게 만들 법도 하지만 송암선생은 욕심을 지양한다.
작품을 만들 가마는 상하좌우 온도 편차가 크지 않은 작은 가마라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과학적인 전통의 기법을 그대로 고수한다. 4톤가량의 소나무 장작을 쉼없이 달아 불을 때고, 밤낮 불구덩이 앞에서 수도하듯 자기와의 정신적 싸움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몸으로 불을 지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체력이 소진돼 그때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티게 됩니다. 끈기와 정성이 있어야 귀한 자식이 태어나는 법이죠.” 한 작품 한 작품을 자식이라고 칭하는 송암 선생. 작품을 위해 욕심을 비운 소박한 가마에 일년에 고작한 두 번 불을 다는 도요지만 세상적인 영리와 타산은 그에게 중요치않다.
봉사하며 베풀고 살아가는 학부모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기특해 몇몇 제자삼아 무료로 가르치고 작은 가마 공간까지 기꺼이 내줘 아마추어들의 작품들을 위해 자신의 일년농사 일부를 작업실에 남겼다. 천상 도예가다.
영혼이 맑은 참 장인(匠人)이 빚어낸 도자기라면 금은보석보다 어찌 귀하지 않을텐가. 붉다 못해 희디 흰 가마속 불빛이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가부좌를 한부처마냥 1,200도 고온에서도 흐트러짐없는 자세로 참선하듯 시간을 태우던 영롱한 찻사발의 자태. 가마터를 되돌아 나온 여러 나날 그 숙연함은 가시지 않는다.
유순희 기자
[2020년 11월 20일 제128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