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부산교구 93년 역사상 첫 여성교구장으로 취임한 박차귀(76) 전 천도교여성회중앙본부 회장은 천도교가 주창해온 신문화운동 전개를 위해 천도교중앙본부에 몸담아 전국의 여성신도들을 지휘해온 지도자다.
얼마 전까지 여성회 중앙본부 회장으로 재임하다가 부산교구를 위해 부산생활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는 손자까지 5대째 천도교의 맥을 잇고 있는 부산 천도교의 뿌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하여 도가(도의 가정)의 완성을 이룬 가장 모범적인 동덕가문이다.
지금으로부터 93년 전 부산에 천도교 교구의 간판을 첫 내건 이가 박 신임교구장의 친할아버지(박찬표)였다. 당시 박 교구장의 나이는 5~6세 무렵. 이후 선친(박차귀 교구장의 부친)이 교구장을 6년간 역임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다른 분이 다시 6년간 역임해왔고, 이번에 임기를 마친 전임자로부터 교구를 다시 물려받아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원래 천도교는 신문화운동을 주창해온 종교로 일찍이 여성 청년 어린이 농민에 이르기까지 신교육 신문화운동을 전개해온 종교단체입니다. 천도교의 종교적 궁극적 목적은 동귀일체의 사회, 세상을 이룩하여 지상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천국을 이루는데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종교보다 어린이의 소중함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중요시 해왔습니다.”
중앙회 여성본부가 설립된 것은 지난 98년 전.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여성단체라고 뿌듯해하는 박 교구장은 천도교는 인내천을 강조해온 시천주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반상, 노소, 남녀의 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천도교의 여성단체는 전국에 지방조직을 두고 주로 생활혁신과 신여성상의 정립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왔고 ‘부인’과 ‘신여성’이라는 월간 여성잡지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지요.”
또 어린이운동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빼놓을 수 없듯이 1921년 청년회 내 천도교 소녀노히를 창립, 전국 순회강연을 전개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소년운동을 제창했고 김기전 방정환 두분이 어린이 정서함양과 청소년의 윤리적 대우 및 사회적 지위를 위해 천도교의 인내천 정신에 맞추어 어린이운동을 폈고, 1922년 어린이날을 선포했다고.
박 교구장은 어릴적 조부를 가장 잘 따랐던 손녀로 조부가 설립한 부산교군 홍익유치원을 다니며 천도교정신을 체득화해왔다. 1남4녀의 첫 번째로 태어나 장남의 역할을 해온 그는 가족들로부터 할아버지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은 손자녀로 기억된다. 순회가정방문시 조부의 손을 잡고 같이 골목을 누볐으며, 시키지 않아도 신앙생활에 착실했다. 저녁9시면 기도실에 모여 매일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한울님께 보고하듯 하루의 일과를 고하는데 이러한 모든 의식이 박교구장은 생활이었고 철저했다.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의 사랑도 많이 받으며 성장했다.
부산동구 초량동에 자리잡은 부산교구 93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박차귀 교구장. 선대 조부가 천도교 부산교구를 설립했고 5대째 동덕을 이루고 있는 가문이다.
박교구장은 부산종교인평화회의에서도 주축이 되어 활동해왔다. 천도교 인내천 사상이 그러하듯 하늘아래 종교라하여 갈등을 겪고 서로 반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부산종교인평화회의 창설멤버로 참여하고 여성위원장을 8년간 역임했으며, 2003년 즈음 전체 사무총장을 맡아 남녀를 아우르는 단체의 실무자로 종교인 평화회의의 실무자로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그동안 단체의 세력은 더욱 확장돼 대구 광주지부의 설립 등 7대 종단을 아우르는 단체로 명실공히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손병희 선생이 일본에 머무르던 1903년 당시 일본과 러시아라는 강국 사이에 처한 조선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고, 국민이 합심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 가지 할 일을 제시한 것이 바로 천도교 교리 3전, 도전 언전 재전이다.
박 교구장은 “지금처럼 국제적으로 혼란의 시기, 강대국틈에서 우리나라가 힘을 발휘하고 글로벌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현실직시는 물론 국민 대통합과 단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럴 때 일수록 천도교정신은 더욱 빛을 발휘하고 있다며, 종교를 초월한 민족정신의 부활을 통한 세계시민의식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머잖아 1남9녀의 운이 온다고 일찍이 설파하셨고 여성이 집안의 주인이라고 늘 강조해오셨지요 물론 사회에서도 남녀 동등한 입장에서 큰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해오신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나라도 여성인재 등용을 위한 적극적 관심과 실천을 펴야한다”고 박교구장은 말했다.
“3.1운동 당시 인구 2천만 명이던 시대에 천도교인이 300만 교도였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다”는 박교구장은 “여기엔 천도교 전반에 흐르는 사람중심, 인간사랑을 모토로 한 인내천 사상이 민족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이제 다시 그 위세를 복원,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한 때, 외세로부터 위협받고 경제적으로 힘든 요즘같은 시대에 전 국민의 단합과 결기를 모아 한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천도교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박교구장은 부산교구를 중심으로 교세를 더욱 확장해나가고 천도교 여성운동을 다시 활성화시킬 대책을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여성이 중심이 되어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시민운동을 다시 점화시키고자 합니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다문화가정의 여성, 해외유입 인구들, 유학인들, 새터민들 등 외롭고 힘든 그들을 보듬어 부산을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천도교의 교리와 정신을 흠모하는 이들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유길정 기자
[2022년 5월 27일 144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