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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사하며 사는 노년의 삶 행복해요”


 
병역명문가 김몽칠 황춘자부부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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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살았고, 이후 수십년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야죠."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열린 병역명문가 증서 수여식이 있었던 지난 6월26일, 참석자 가운데 가장 많은 연세로 보이는 노부부 한 가족이 눈길을 끌었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3대 병역명문가이행 가족으로 등록 신청해 증서를 받게됐다고 기뻐하는 노부부는 이날 기념식장에 애국가와 군가가 울려 퍼질때 새삼 짠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말한다. 전쟁을겪었던 세대이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싸웠던 당사자였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고.
 
올해 3대 병역이행 명문가로 선정된 김몽칠(84) 황춘자(75) 부부는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 육군제대한 아들김명식(53)씨와 손자 김경빈(26)군도육군으로 복무, 명실공히 3대 병역이행 명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북한이 고향 자유찾아 남하
 
김할아버지는 평북 철산 출신. 북에서 정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무살에 남하해 정착해 살았다. 당시이북에서 공산당이 득세할 때 부친이 동네 유지인데다 교회까지 다닌다는 이유로 이장 등과 함께 죽임을 당하자, 며칠간 잠잠해질 때까지 배를 타고 바다에 떠 있다가 들어온다는 게 그 길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김할아버지는 "당시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와 동네 유지들의 시신을 모래사장에서 찾았는데 얼마나 대창으로 찌르고 구타를 했던지 혀가 목밑까지 빠져나와있고 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지요. 후에 공수 부대 들어가서 원수를 갚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전쟁이 터지자 젊은 남자들은 무조건 징집돼 갔다는 김할아버지는 총 한번 시험 발사해 본 게 군 훈련의 전부인 상태로 군대 들어가 다행히 복무중 인사과에서 일을 했다. 다른 전우들은 고지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부상 아니면 사망인채로 돌아오기 예사였던 전쟁시절 전쟁터에 나가 3일만 살면 안 죽는다는 말이 돌정도로 다들 깡으로 버텼다고.
 
 
"이상하게도 군에서 가족들 생각많이 하는 사람들이 잘 죽더라구요. 그래도 다들 젊어서 그런지 겁나는 것도 없었고 사기 하나로 사지로 나가장렬히 싸웠지요. 다 애국자들이예요."
 
빈손으로 출발 성공적 삶
 
김할아버지는 행정병으로 7년여간 군복무를 마치고 중사로 제대해 북에서 내려와 영도 남항동에 살고있던 사촌집에 얹혀 살다가 피란 온 황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황여사는 평남 평양 출생으로 피란 때 창덕여고를 나왔다. 모태신앙의 두사람은 지인들의 소개로 결혼해 처음엔 무일푼으로 출발했다고.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교육시켜 출가시키기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당시 남편은 미군부대에서 일했고, 억척 이북여성 황여사는 다라이 장사부터 시작해 시골에서 감자 한 푸대를 사다가 시장에 내다 파는 강한 생활력으로 내조했다. 이후 미용과 양재를 배워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국제시장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며 첼로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악전공자녀들을 유학까지 보내며 훌륭히 키웠다.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나서는 내하고싶은 일을 해야겠다싶어 영어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때가 60중반이었네요. 밤에 잠 안자고 독학으로 공부했고 때로는 선생한테 배우면서 부산역에 나가 새마을호 타려는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며 영어회화를 실습했지요."
 
외국인 통역봉사 십수년 째
 
이후 미국에 나가 3년간 살면서 맨해턴에서 워싱턴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한 말 두 말 배워 의사소통할 정도까지 이르게 됐다는 황여사. 처음 외국인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려 당황하던 그녀도 이젠 외국인 통번역 자원봉사자로서 없어서는 안될 유능한 통역자가 됐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매주 수,금요일 낮 12시부터 오후4시까지 10여명서 교대해가며 통역봉사를 하고 있는 황여사는 봉사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십수년째 부산국제여객터미널과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외국인들의입수속을 돕는 등 배 변경시간과 예약시간 등을 안내하고 분실물을 찾아주는 것까지 외국인들의 불편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여객터미널 마스코트 자원봉사자인 황여사. 평일엔 틈틈이 대연동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봉사까지 도맡고 있는 일등급 자원봉사자. 15년째 외국인 한글수업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황여사는 이들에게 코리안 맘으로 통한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김몽칠옹과 황춘자여사부부. 장로와 권사직분을 맡아 교회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는 이들 부부는 "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하며 살고싶
다"고. 덧붙여 "최선을 다해 보람있게 살다보면 행복과 건강도 더불어 쌓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유순희 기자
[2013년 7월19일 제4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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