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6년 10월 02일

인터뷰

“패션디자이너이자 경영인으로 성공한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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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CEO, 패션디자이너, 예술창작 크리에이터, 여성활동가, 사회단체장. 하루가 부족할 만큼 동분서주하는 한마디로 팔방미인 김인숙 부산국제민속예술협회 회장.

지역사회에선 오랫동안 국악협회에서 활동해온 이력이 익히 알려진 터라 통상 국악하는 예술인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다. 그런 김 회장이 40년 넘게 부산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의류를 디자인하고 제조 유통해온 기업인이라는 게 놀랍다.

그것도 단순히 패션업에 종사하는 지역 소형 업체 브랜드가 아니라 발레와 무용복, 여성복에 관한 한 전 세계가 알아주는 특화된 의류를 제조 유통하는 업체를 창업 운영해오고 있는 CEO다.

지난 9월초 더 현대 서울점에서 사흘간 팝업 브랜드로 초청돼,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성황리에 마친 여성의류브랜드 ‘디아트레’ 댄스팜 코퍼레이션과 ‘메시아 댄스웨어’ 창업주이자 회장이 바로 그다. 백화점 측 예상액을 훨씬 뛰어넘는 초과매출 달성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입소문을 탄 글로벌 브랜드 인기 의류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본지는 최근 부산동구 소재 문화공감수정(구 정란각)에서 김인숙 회장을 만나 일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장, 케쥬얼 등 당시 유행복을 만들던 의상실을 창업한 것은 1985년이었고, ‘메시아’라는 자체 브랜드로 의류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2년이었어요. 개인회사로 출발해 법인화 한 거죠. 유행에 뒤지지 않고 퀄리티가 있는 옷을 제작하고 싶었고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한 개성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죠. 초창기엔 주로 OEM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전공이 국악인 터라 디자인 공부를 제도권에서 전문적으로 한 경우는 아니었다. 독학을 하며 의류패턴을 연구하고 전 세계 패션잡지와 영상물을 구입해 보며 패턴과 디자인을 연구, 실력을 키웠고 자신만의 감각과 창의성으로 댄스웨어 K스탠다드를 정립, 성공한 케이스다.

처음 시작은 브랜드 ‘마돈나’라는 무대의상을 중심으로 주문받아 맞춤 제작했다. 무대의상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자신만의 개성있는 연출로 무대에 서고 싶었던 사람들 대부분 김 회장의 의상실을 찾았고 당시 전국에서 명성을 떨쳤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시기 우리나라 경기가 엄청 좋을 때였어요. 야간통행이 해제되면서 밤 12시~새벽 시간까지 나이트, 가라오케, 술집 등이 성황을 이루었고 밤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하루 여러군데 뛰며 돈을 벌 게 되니 무대의상 주문도 불티났지요.”

김 회장은 창업 초창기, 공연 무대를 뛰는 아티스트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 유명세를 떨치며 돈을 끌어모았다. 공장이 없던 초창기엔 물량이 딸릴 경우 서울 남대문에서 무대의상을 떼어다 팔기도 했다.

이후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자체 의류공장을 설립하고 법인으로 전환한 ‘메시아’는 당시 스포츠댄스 열풍을 타고 댄스스포츠복은 물론 어린이 발레복, 한국 무용의상에 이르기까지 공연작품에 맞춰 의상을 특별 제작하는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클라이언트들 또한 이제 무대에 서는 개개인에서 학교, 학원, 단체, 기업 등 더 큰 조직으로 전환되면서 사업은 더욱 확장되어 갔다.

아무도 걷지 않던 길을 용기있게 도전해 기술력을 갖추게 된 김 회장은 무모하리만큼 용기 충만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초창기에는 극장식 쇼 무대에 오를 작품 의상을 많이 제작했는데 한국의상은 물론 일본 기모노, 중국옷 등 모든 분야의 옷을 소화해냈고, 대부분 책자를 보고 연구해서 작품에 맞는 의상을 만들어냈어요. 이후 술집 경기가 하락하면서 발레복과 무용의상에 눈을 돌리게 된 거죠. 무용 스포츠 의상들도 시대변화에 따라 유행이 바뀌면서 에어로빅-재즈댄스-스포츠댄스-발리댄스 등 다채로웠는데 유행도 돌고돌아 요즘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있는 것 같아요.”

김 회장은 못 만드는 옷이 없었다. 고객들의 주문에 ‘노’라고 답해본 기억도 없다.

“처음 발레복 주문 받았을 때가 생각나네요. 책을 보니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을 갖고 한 번도 제작해보지 않았던 튜트의상(발레복)을 주문받았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 발레복 치마가 축 쳐져서 안 서는 거예요. 콩쿨의상으로 맞춤주문을 받았던 옷이라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이후 수차례의 연구과정을 거쳐 탄탄한 기술력을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는 김 회장은 이제는 무용선생이나 석·박사 전공자들, 의류패션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전문적 대화를 나누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 의상에 관한 한 작품에 맞게 주도적으로 연출을 리드하고 디자인을 완성해나가고 있는 부분에 자부심을 느낀다.

김회장은 작품의상을 주문받으면 먼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부터 했다. 의상의 칼라와 디자인을 기획하기 전 작품주제와 음악 등 전체적인 내용이해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무대의상을 연출해내기 위해서다. 무대의상이라 해서 무조건 화려한 게 능사가 아니라는 그는 원가계산에 연연하기보다 최고의 원단과 의상의 부속품까지 디테일하게 신경썼다.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덧입혀야 완벽한 작품의상이 나올 수 있기에 완벽을 기하는데 집중해왔다.

전공자들을 능가하는 독보적 기술력을 갖게 되기까지 국내외 전문잡지를 정기구독해가며 정보를 취득했고 미싱사 재단사들을 채용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었다. 지난 40여년간 전문서적에 투자한 비용만 해도 만만찮다. 전 세계 각 국의 비디오, CD, 서적 등을 판독하고 여러 번 돌려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덕분에 국내외 트렌드와 정보를 가장 빨리 민감하게 접목하며 드레스나 무대의상, 여성복 등 모든 의류를 직접 디자인하고 연출할 수 있었다. 오로지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창의력, 부단한 연구정신으로 전공자들을 능가하는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한 셈이다.

원단만 봐도 어떤 디자인을 하면 좋을 어떤 옷을 만들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팍팍 떠오른다는 김 회장은 사내 참신한 감각의 젊은 디자이너들도 많지만 여전히 신제품 디자인은 직접 하거나 감수하고 총괄 지휘한다.

그렇다고 뒷짐지고 감독만 한 게 아니다. 직접 미싱을 박아가며 날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 회장의 책임감과 고객의 무한신뢰가 한 몫 톡톡히 했다.

“예전에 무용복 하면서 대여업도 했었어요. 학교에 의상을 30벌 대여 납품해줘야 하는데 작품내용과 우리 옷이 안 맞은 거예요. 당장 내일까지 납품인데 직접 제작해서 납품해야겠다는 판단하에 아침부터 재단하고 서둘렀는데도 안 끝나 야간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밤 8시가 되니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혼자 남아 밤새 미싱작업을 해서 다 맞출 수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꼬박 밤을 세워 작업하다가 미싱에 손을 박히기도 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일을 했지요.”

매순간 김 회장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더 완벽한 의상을 위해 대여복일지라도 맞춤복으로 제작해 납품하기도 한 정성과 열정이 오늘의 ‘디아트레’와 ‘메시아 댄스웨어’의 명성을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부산진구 서면 지하상가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다. 메시아 브랜드 회사의 경영을 뒷받침해줄 별도의 수입원 창출을 위해 튤립수영복 부산경남 총판, 아레나 수용복 부산대리점 등을 운영하며 점포를 한 칸 한 칸 늘려갔다. 지금의 동구 신사옥은 지난해 작업 공장이 가까운 곳으로 확장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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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 회장은 10여 년 전 영어를 전공해 통·번역은 물론 글로벌 감각을 갖춘 아들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기고 자신은 경영고문으로서 회사를 돕고 있다. MZ세대들의 감각과 공격적 경영이 먹혀드는 시대라고 판단한 그는 수년 전 브랜드도 새롭게 런칭했다. 주식회사 댄스팜으로 사명을 변경, 기존의 메시아 댄스웨어 브랜드와 함께 댄스웨어의 한국대표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는 K스탠다드를 구축했다. 발레의 헤리티지와 우아함을 일상의 여성복으로 진화시킨 ‘디아트레’ 브랜드가 인기를 끌면서 사업도 더욱 확장되었고, 내친김에 글로벌 시장 판로개척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웰니스 애슬레저 ‘포타’, 발레에서 시작해 움직임을 문화로 확장하는 커뮤니티형 메시아컬쳐 스튜디오 운영 등 테라브바레 필라테스 학원경영과 강사양성 사업까지 명실공히 댄스팜그룹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싱가폴, 일본 등 해외 여러나라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댄스팜’은 부산 동구 초량동 본사 사옥에 매장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판매쇼룸과 소비자 상담 등 인근에 자체 공장까지 갖추고 국내외 거래처에 납품, 본사에만 해도 50여 명의 고용을 창출하며 강소기업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윤추구에 연연하지 않고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의상을 정직하게 만들겠다는 소신과 열정과 철학을 따랐다”는 김 회장.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한다.

김인숙 회장은 원광디지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했으며 현재 부산국제민속예술협회 회장, 부산예술총연합회 수석부회장, 국악진흥회부산지부장, 메시아, 댄스팜 창업주로 부산지역에서 예술인이자 기업가로 경기민요 국악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유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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