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권·노혜선 부부와 일곱 남매가족
힘든시기 찾아온 아이들은 부담 아닌 ‘희망’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 덜어주는 보물덩어리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 덜어주는 보물덩어리
일곱 남매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곳, 남구 감만동 도로변의 낡은 상가건물 2층. 이곳은 아빠 하재권(45)씨와 엄마 노혜선(42)씨가 7남매와 함께아기자기한 추억을 쌓고 있는 그들만의 보금자리다.
요즘처럼 아이 낳기 꺼려하는 사회분위기 속에 슬하에 7남매나 둔 용감한 부부가있단 소문에 달려가 본 그곳엔 훌쩍 자라 어엿한 성인이 된 두 아들과 사춘기 소녀,그리고 고만고만한 꼬맹이들 네 명이 이들 부부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든든한 첫째 아들 두경이(22) 아래로 꽃미남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훈훈한 외모의둘째 동겸(20), 어엿한 숙녀 티가 제법나는 사춘기 소녀 셋째 장미(16).
이렇듯 자녀 셋을 둘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4자녀가 더 생기리란 예상은 전혀 못했던 부부는 7년 후 넷째 딸 장빈이(9)를 낳았고, 이어 장금이(6), 장영이(4), 막둥이 백록이(3)까지 다둥이 가족을 완성하고야 말았다.
이들 가족의 출발은 진짜 사나이 경상도남자와 살림 잘살기로 유명한 전라도 여자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2남2녀 중 맏딸이었던 엄마 혜선씨는 스스로 벌어서 고등학교를 다니겠단 의젓한 생각으로 부산의 야간고를 다닌 것을 계기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됐단다.
그 후 우연히 지인의 백일잔치에서 남편 재권씨를 처음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연 20년. 부부는 가정을 이루면서 처음부터 일곱 남매를 낳으리란 가족계획을 세운 건아니란다. 셋째까지 낳고 난후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갔지만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에 결국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다시 정착한 고향생활 역시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려운 형편으로 힘들어하던 부부에게 시어머니가 화상을 입어 큰 수술을 해야하는 시련까지 닥쳐왔다. 그 무렵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던 아내는 다섯째를 임신한걸 알게 되었고, 힘든 시기에 찾아온 아이가 희망으로 느껴지면서 비록 시어머니 병수발로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뱃속 아이가 버팀목이 되어 주어 그 시절을 버텼다.
하지만 임신사실을 남편에게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어려운 형편에 무사히 출산하게 될 지도 불안해하던 혜선씨는 결국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남편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여섯째, 일곱째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남편 재권씨도 적잖이 놀랐었다고. “네째부턴 낳고 나서야 아이의 존재를 알았어요. 아이들이 전부 2kg이 조금 넘는 체중으로 태어나다 보니 배도 티가 나게 불러오지 않았고, 전혀 눈치 챌 수가 없었던 터라 막상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당황스러웠죠. 마침 제가 집에 없을 때마다 아이들을 낳았는데 저희 큰딸이 전화로 ‘아빠, 엄마가 어디서 아기를 데려왔어’라고해서 알았을 정도니까요”
아이들이 다섯, 여섯 늘어갈 때 마다 이들 부부라고 왜 걱정이 없었을까. “다섯째 장금이가 태어났을 땐 아이가 없는 친정오빠에게 주자는 말도 나왔을 정도예요. 하지만 태어난 아기를 보면 너무 예쁜데 어떻게 그래요? 애교 많고 너무 예쁜 애들이 저희에겐 보물인걸요”라고 말하는 혜선씨.
특히 막내 백록이를 가졌을 때는 시어머니가 또 다시 뇌출혈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배부른 몸으로 집안살림과 병간호까지 병행해야 했었다. 임신했을 때나 누려본다는 호사 한 번 누려보지 못하고, 오히려 임신한 몸으로 병원에 드나들며 간호를 하다 보니 아이를 조산하기도 했지만, 일곱 아이 모두 큰 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넷째부터는 병원에서 출산하기는 커녕 임신기간 동안 병원진료 한 번 받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을 낳아 길렀지만 무탈하게 자라주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는 부부.
“요즘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꺼리잖아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걱정의 시선을 보낼 때도 있지만, 우리부부 아직 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 비록 넉넉하진 않지만 사랑으로 키우면 아이들 각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 믿어요. 어느 부모나 그렇겠지만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뒷받침해 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부부.
하지만 이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일용직근로자인 남편의 수입으로 9가족이 생활하고 시어머니까지 돌봐야 하니 아이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도 벅차기만 하다. 최대한 절약하며 살다보니 그 흔한 스킨로션조차 없다는 아내에게 아이들의 미소야말로 최고의 천연화장품이 아닐까.
시어머니의 화상수술이며 뇌출혈수술로 병원과 집을 오가던 시절, 산후 몸조리는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변변한 산후조리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밀려드는 서러움도 잠시,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을 보면 부부는 그저 모든 고된 것들이 눈녹듯이 사라진단다.
“처음엔 친정엄마도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요즘엔 우리 가족을 보면 ‘너희 집엔 돈만 없지 부족한 게 없구나, 언제나 웃음꽃 피우며 참 재미있게 사는구나’하신답니다.”
넉넉하진 않지만 늘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이들 부부는 ‘돈이 있어도 화목하지 않다면 그런 돈은 필요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아홉 식구 대가족이 살아가는 이들만의 비결 중 ‘남편은 어떤 일로 아내에게 도움을 주는가’ 건넨 질문에, 집안일은 전혀 도와주는 것이 없다 말하면서도 섭섭함이 묻어나지 않는 아내의 말투가 의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용직근로자인 남편 재권씨는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서툰 집안일을 돕는 대신 언제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상한 남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어머니 병간호로 출산 직후 자신의 몸은커녕 신생아조차 돌볼 수 없었던 처지의 아내대신 수개월동안 우유병 삶고 기저귀 갈아가며 다섯째 장금이도 건강히 키워낸 남편이다.
“웃고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많이 싸우고 울기도 했죠. 하지만 아이들을 두고 헤어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애들을 두고 이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비록 형편이 어렵긴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장난치며 잘 놀아주는 남편이 무엇보다 든든해요."
주말이면 자주 술상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부부. 매일 보는 부부사이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마는 이들 부부의 대화거리는 무궁무진하단다. 하루라도 바람 잘날 없는 7남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가족 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느낌이라고.
이들 대가족에겐 가족외출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동하기도 불편하지만, 어렵사리 외출을 해도 마치 동물원 구경하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받게 된단다.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주로 집안에서만 보내야하는 꼬맹이들이 안타깝지만,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퇴근 후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더욱 다정한 아빠가 되어 주고있다고.
9가족에게 당장 불편한 건 외출 뿐만은 아니다. 9가족을 감당하기 턱없이 작고 낡은 냉장고와 오래된 싱크대가 자리 잡은 주방이 아내로선 안타깝기만 하고, 이모님댁의 집을 무료로 빌려 사는 탓에 낡아도 수리를 요구하기가 어려워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천장, 여름이면 지나치게 덥고 겨울이면 난방이 잘 되지 않는 환경에 아이들이 지내야하는 게 속상한 아빠.
이들 부부는 다자녀가족에게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보다 나은 정책과,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미래의 보물인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갖춰지길 바라본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는 친정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올 여름 웨딩촬영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만히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노라면 꾸밈없는 소탈한 성격의 아내, 자상하고 속깊은 남편, 밝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 속에 감출 수 없는 이들 가족의 행복이 잔잔히 번져있음이 느껴진다.
유시윤 기자
[2012년 11월 19일 제36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