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범시민운동에 앞장서고, 강연이나 일인 시위 등을 통해 10년이 훌쩍 넘도록 독도수호의 의지를 불태워 온 이가 있다. 독도해병지킴이 박영춘 본부장(69).
“독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내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그는 “희생정신으로 고독하게 싸우는 것이 애국으로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학교, 관공서, 경로대학 등을 다니며 독도 강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재정적 보조도 없이 거의 자비를 들여 활동을 하고 있다.
박 본부장이 독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엄연히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이 계속해서 허무맹랑한 짓을 하는 것은 보고 우리 국민에게 독도를 알려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그가 독도와 관련한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4년 퇴직 후 부터다. 그 무렵 독도를 방문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지킴이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액자, 서류 등을 챙겨 관공서나 기관을 찾아가 독도에 대해 홍보를 했는데 처음에는 접근이 쉽지 않아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꾸준한 노력으로 그의 명성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자 그는 좀 더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독도지킴이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는 표창을 수여함으로써 보람을 느끼게 했고, 학교에서 독도지킴이로 모범을 보인 학생들이 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독도를 지키는 일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했다.
지난 2008년 ‘독도해병지킴이’를 조직해 그해 12월, 제1회 독도사랑강연회를 실시한 이후 매년 독도관련 웅변대회와 강연을 해 나가고 있다. 힘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그자신도 웅변을 시작해 열심히 연습을 했고 전국 단위의 웅변대회 등에 50여회나 참여했다. 웅변으로 갈고 닦은 실력은 지금도 강연에 잘 활용하고 있다고.
박 본부장은 “지난 2008년 6월 구덕고등학교에서 했던 ‘독도가 왜 우리 땅 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 백동공원에서 실시한 ‘가깝고도 먼 독도사랑’ 강연까지 총 20회가 넘는 강연을 해 왔다”고 한다.
평소 자료를 보관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그는 독도에 관한 자료 외에도 한국전쟁 전후의 자료들을 모아 두었는데, 소장했던 많은 자료들을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에 기증하고 받은 기증서도 많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소중한 것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독도에 대해 더 많은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이버대학 독도학과를 수료, 독도교육사 자격까지 취득할 정도로 열정적인 박 본부장은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현재 독도에는 해양경찰이 주둔하고 있지만 해병대가 상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고 있고 극우파는 아예 독도를 일본 영토화하려는 마당에 국토수호의 개념으로 반드시 해병대가 지켜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일본이 지난 2016년 내 놓은 방위백서에 따르면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영토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는 표현이 담겨있다.박 본부장은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주경야독하며 학교를 다녔고, 1966년 동경하던 해병대에 175기 신병으로 입대했다. 전역 후 육군 인쇄공창군무원, 현대건설을 거쳐 풍산금속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독도지킴이해병본부는 현재 13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직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지만 그는 아무런 보수도 대가도 없이 독도지킴이로서의 행보를 뚝심 있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면서도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에는 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독도의 지리적, 역사적 가치에 대해 더 알리고 일깨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독도지킴이로서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기사들, 감사장, 공로패, 웅변대회를 통한 상장, 상패 등이 날이 갈수록 쌓이고 있지만 나의 관심은 오직 독도사랑이다” 라고 할 정도로 순수하게 독도를 사랑하는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독도 파수꾼이자 수호천사이다.
박정은 기자
[2017년 1월 20일 제84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