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왔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네요. 어떤 보직이든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해온 덕분인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1일부로 부산 사하구 부구청장에 임명, 부산지역 기초자치단체 여성부구청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복덕(58) 전 부산광역시 총무담당관은 자리를 옮겨 새로운 업무파악에 분주했지만 사하구는 결혼 후 줄곧 살아온 지역이라적응이 빨랐다고 말한다.
지자체 여성공무원으로서는 드물게 전국최초의 지자체 예산계장, 고시계장, 세정담당관에 이어 부산시 첫 여성 총무담당관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 마다 여성이 처음인 자리에서 주요보직을 경험, 공직사회 금녀의 선을 허물어왔다.
부산이 아시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었던 시절, 여성가족정책담당관실을 신설 하면서 첫 여성정책담당관으로 임용돼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까지 지낸 부산시 총무과장 자리는 시의 주요 의전과 행사 기획, 인력관리, 근무평정 등 능력개발, 공무원 임용시험 등을 관장하는 업무영역으로 1963년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한 이후 46년간 단 한 번도 여성 공무원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자리였다.
이처럼 전부구청장은 가는 곳마다 여성공무원으로서는 첫 보직이 많았지만 웬만한 남자 공무원 못지않은 열정으로 주어진 책무를 무난히 수행해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하에서 공직생활 시작 다시 사하로
지난 1973년 지방행정서기보로 공직사회 첫발을 들여놓은 전 부구청장은 감천1동 사무소에서 8개월간 첫 업무를 봤다. 때문에 공직 말년에 즈음하여 다시 적을 옮긴 사하구는 38년여 공직생활의 시발점이었던 만큼 인연이 각별한곳.
이후 서구 남부민동 출신의 전 부구청장은 고향인 서구에서 지난 20여년동안 서구청 세무과, 가정복지계장 직대, 예산계장, 민원계장, 의료보장계장, 가정복지계장 등을 지냈다. 공직생활후 남보다 오랜 외곽생활로 시본청 입성은 90년대 후반들어서야 가능했다.
뒤늦게 시본청에서 체육청소년과 청소년 보호담당, 여성정책과 생활지도계장 등 행정관리국 총무과 고시담당 등을 지냈다. 이후 99년 다시 여성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직무대리, 여성문화회관장을 역임하며 부산여성문화회관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2층 예식장 대강당을 쓸모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야간 부부스포츠댄스반, 요가 등 6과목을 신설 지역사회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현장을 발로뛰어온 별난 보직 경험자
서구청 시절 영세민 치로사업 업무를 담당하면서 처음으로 공직생활의 참맛을 느꼈다.
시쳇말로 ‘노가다 십장’일이지만 현장에서 인부들과 부대끼며 현장 업무를 지시하고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공사현장을 누빌 땐 땀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열흘단위로 지급되는 인부들의 노임을 나누어 줄때면 뿌듯함이 컸다고.
서구청 수도과 하수도 사용료 업무를 보던 시절, 지하수 사용료 측정을 위해 공장 지하와 옥상 물탱크를 오르내리며 전문가적 식견을 쌓기도 했다. 옥상 하수도 여과조는 수중 증발치가 많아 정확한 사용수치를 측정하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어서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의뢰해보기도 했지만 엉터리 측정이 많아 일일이 수도 측정기 앞에서 분당 계측에 직접 나서는 등 주로 현장을 발로 뛰며 행정을 살펴야 하는 별난 업무를 많이 경험했다.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만만찮은 분야도 많았지만, 주어진 역할마다 즐기며 신명나게 일해왔다는 전부구청장은 공직생활이 천성에 맞는 것 같다고 밝게 웃는다. 휴가 5일이 따분해 절반씩 나누어 사용할 정도로 일을 즐기는 편. 놀면좀이 쑤실 정도라니 애살많은 그의 일사랑척도를 가늠케한다.
전부구청장은 여성공무원으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보직을 경험한 몇안되는 여성공무원 중 한 사람이다. 서구청 6급공무원시절 지자체에서 전국 처음으로 예산계장에 발령났을 때 여성이 어떻게 예산업무를 담당할 수 있냐며 여기저기서 문의가 빗발쳤고 언론의 집중을 받기도 했다.
여성의 역할 공기업에서도 필요
그러나 전부구청장은 예산이야말로 가정살림살이를 책임져왔던 여성들의 규모있고 섬세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며 오히려 여성들에게 적성이 맞은 보직이라고 말한다.
다만 여성공무원들의 경우 그동안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주요 보직의 경험을 두루하지 못해 능력이 사장되거나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요즘같은 시대야 여성공무원의 비율이 늘어나고 직급과 연한이 찬 적격 여성공무원이 있을 경우 주저없이 주요보직에 앉히는 게 일반화 추세라는 그는 머잖아 부산의 공직사회 관리직 여성의 비율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여전히 한자리 수를 넘기지 못하는 공기업 여성임원이 저조한 것은 적극적 단행과 조치 없이는 한국의 여성권한 척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유순희 편집국장
[2011년 9월 16일 23호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