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희 (주)경인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묵직하고 그저 투박하기만 한 도시의 대형 건물들 사이에서 생활하다보면 사람들의 마음마저 삭막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은 밋밋한 상자와 같은 단조로운 도심의 건물들 사이에 아름다움이돋보이는 건축물이 많아졌다. 건물 자체로서의 기능에 당당한 아름다움이 더해진 건축물 뒤에는 베테랑 여성 건축사의 활약이 있었다.
부산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빼놓지 않고 들러본다는 부산문화예술회관, 특히 여성들에게 많이 알려진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양산시 건축문화대상제 대상을 받은 한국합판사옥, 수영구복합청사, 부산국제 외국인학교와 부산소방학교 등 지나치면서 한번쯤은 보았을 멋진 건물들의 창조주는 바로 이아희(50·(주)경인건축사 사무소대표) 건축사.그녀는 쟁쟁한 남성 건축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부산의 몇 안 되는 여성 건축사 중 한명이다.
남자들이 판을 치는 건축업계에서 여성으로써 살아남아 굳건히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여성특유의 섬세함과 유연한 사고,건축주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예리하게 통찰하는 센스, 진실한 인간관계로 신뢰를 쌓아가는 그녀만의 비결이 있었다.
건축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중학생일때 영화 ‘타워링’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고, 대학을 진학하면서 건축에 대한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되었단다. 몰입이라는 과정을 지나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나만의 아이디어가 창조적인 결과물로 눈앞에 드러나 오래도록 남게 된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이었다고.
본격적으로 건축업종에 뛰어들고 나니 남자들과의 경쟁을 우려해 건축전공을 반대했던 부모님의 걱정처럼 현실은 여성에게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단다. “초기에는 체력적인 면이 많이 힘들었죠, 밤샘작업도 많고 여러 가지 남자에 비해 체력적으로 많이 불리했죠”라며 그는 사회초년생 시절을 회고한다.
“처음 일을 기획해서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의 그 일련의 프로세스를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많아요, 특히 건축업종에 있는 분들이 90%이상 남자입니다, 대부분의 건축주, 관공서의 인허가 책임자들,직원들과 현장종사자까지.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견을 잘 조율하고 협력하며 과연 내가 어느 위치와 어떤 역할로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지를 잘 대처해야 했죠”라는 그의 말에서 노련한 건축사다운 면모가 돋보였다.
남성건축사들은 여성들에 비해 수주를 위한 영업적 비지니스에도 훨씬 유리하다. 특히 각종단체나 모임에 소속되어 건축주와 연결될 기회가 많은 반면 건축사들의 모임 외에 그 어떤 외부모임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이대표는 오로지 성실함으로 쌓은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 그를 알아주는 주변인들이 늘어나고 소개가 이어지고 있다.
건축주에대한 신뢰를 높이고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지금도 직접 건축의 계획과 설계, 인허가 등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는 이 대표. 대학 졸업 후 8여 년간 현장경험을 쌓아 실무를 익힌 후 지금의 건축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처음 얼마간은 주로 공장건축을 해왔다.
그 당시 30대의 열정과 완성도 높은 건축물에 대한 고집으로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오랜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로 사고의 유연함과 여유라는 것을 얻게 되었다.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리성을 염두에 둠과 동시에 건축주의 많은 요구들과 시공자 입장에서의 다양한 의견 사이에서 상호이해와 설득으로 합일점을 찾고 인간다움으로 다가서는 이대표. 건축주와 건설·시공자 그리고 동료 건축사들에까지 그는 실력있고 성격좋은 건축사로 두루 정평이 나있다.
개업 초 공장설계를 많이 했던 경험으로 부산에서 가장 큰 설계사무소에서 이대표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건축사들이 일을 소개할 만큼 동종 업계의 동료들에게도 인정받는 베테랑이다.
그 실력은 관공서 건물을 짓는 공모전에서도 여러 차례 당당히 당선이 되어 앞서 나열한 유용성과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멋진 건물들을 완성시킨 것이다.
건축에 대해 이 대표는 “건축에 대한 견해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빨리 변화하는 인간의 라이프사이클을 염두에 두고 건축을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그 건축물이 기능과 용도를 상실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기능과 용도에도 적합하게 재구성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라며 예측을 할 수 있는 설계가 될 수있도록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현재 동의과학대학교의 건축학과와 동아대학교의 도시계획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후학을 양성하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대표는 건축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인내를 가지고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곧 잠재력이 되어 언젠가는빛을 발한다”며 건축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것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을 귀띔해 주었다.
이대표는 부산시의 주거환경개선사업에도 동참하여 작년부터 사상구와 금정구의 버려진 공간을 이용해 열악한 환경을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바꾸는데 도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전문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환경개선 사업에도 참여해왔습니다”
시에서 여러 가지로 조언을 구할 때 마다 아이디어를 내어주고 직접 팔을 걷어 부치며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일이 번거로울만도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무료봉사를 하고 있다고. 그런베품의 결과는 뜻하지 않게 공공디자인 우수상을 받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계획한 열개 중 한개만 성사되어도 인정받는다는 이 업계에서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고야마는 뚝심있는 그녀. 그만큼경쟁력을 갖춘 실력자, 그녀가 바로 이아희 여성건축사이다.
유정은 기자
[2011년 8월 18일 22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