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가정이야기<4> 남부민동 8남매 가족
착하고 온순한 4남 4녀 달란트도 각양각색 어려움속 희망
가장, 건설현장 일하며 생계책임…난방비·수도요금 큰 부담
부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그곳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송도와 영도 앞바다를 비롯 연안여객이 머물다가는 쪽빛 해안까지 한 폭 그림같이 펼쳐지는 곳,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탄성이 절로 새어나오는 산복도로위, 부산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에 그들이 산다.
요즘 보기 드물게 8남매가 오순도순 살고있는 부산시 서구 남부민2동 이수원(50) 우윤숙(43)씨네 집. 산복도로조차 낮은 듯 꼬불꼬불 계단을 오르고 골목을 돌고 돌아 산의 어깨쯤 해당되는 그곳에 둥지를 튼 그들의 보금자리는 이처럼 천혜의 경관을 끌어안고 아늑히 들어서 있다.
여덟살 장남 호성군 밑으로 정빈(16. 남),주은(14. 여), 진명(12. 남), 연경(9. 여), 지현(6. 여), 보영(4. 여), 준홍(2. 남) 등 두 세 살터울의 4남4녀가 동화속 주인공들처럼 알콩달콩 살아가는 곳이다.
8남매 가족을 찾았을 때는 구정을 앞두고 모처럼 가족사진을 찍던 날. 지난 연말 즈음태어나 아직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막둥이 준홍이의 출산을 기념해, 모처럼 일찍 귀가한 아빠와 함께 8남매 가족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던 참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해맑고 순했다. 복작복작 공간은 협소했지만, 유달리 온순해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들은 세트장 같이 재미나게 짜여진 2층 구조의 집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서로 동무처럼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산의 계획이 이들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었을까. 아이 넷을 넘어서면 서로가 두려울 만도 하건만 이들 부부는 왜 겁없이? 생기는 대로 순응했을까. 엄청난 사교육비나 자녀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감당안돼 모두가 꺼리는 다산을 쉽게 마음 먹었을까.
“사실 남편도 일가친척이 많지 않고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달랑 누이 한 사람 뿐인데 왕래도 없어 늘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아내 윤숙씨는 자신 역시“ 친정의 대소사 시 남들처럼 가족이 복작복작 모여본 적이 없어 명절 때 많은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며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자식이 생기면 달리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자식과의 ‘인연’이라며 하늘의 선물을 왜 마다하냐는 이들 부부는 아이들과 부모의 연이야 말로 보통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게 아니라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남편이 아이들을 참 좋아해요. 밖에서 놀다가 조금이라도 다쳐오면 지나칠정도로 속상해 합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한 손가락도 아프지 않은 게 없듯 부모 마음 다 똑같지 않나요. 내리사랑이라더니 정말 낳을수록 정이 더 가고 그렇게 이쁠수가 없어요.”
사실 남편 이수원씨는 넷째까지는 무반응그 자체였고, 다섯째를 가졌을 때 적잖이 힘들어하기도 했다고.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래도 여섯째부터는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였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8남매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악착같은 윤숙씨의 생활력 덕분이다. 생활은 팍팍하고 남편의 벌이도 시원찮지만 절약하며 살림을 꾸려왔다는 윤숙씨는 대가족 살림노하우를 꿴듯했다.
다섯째가 생기기전까지만 해도 아내 윤숙씨는 4남매를 키우면서도 안해본 일이 없다. 보험회사 설계사, 포장마차 호떡장사까지 생계형 맞벌이에 나섰고, 남편 이씨도 IMF이전지업사 전문 재단사로 일해오다 실직, 이후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가장의 책임을 다해왔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생활은 늘 빠듯하다는 이들 부부는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 제일 걱정된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20만원은 족히 내야하는 수도요금과 아끼고 아껴 10명의 가족이 겨우 석유 한 드럼을 때지만 20여만의 연료비도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한달소비하는 쌀만해도 80킬로그램은 족히 된다.
달라진 출산장려정책, 이들에게 도움은 되고 있을까. 여덟째를 낳았을 때 관할구청에서 1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해주는 혜택도 누렸다는 윤숙씨는 의료보험공단과 결연을 맺어 매달 20kg 쌀 한 포를 지원받기도 한다고.
막둥이를 출산한 위생병원에서 100일간 사용할 아기 기저귀를 무상 지원해주는 등 선택 예방접종도 무료로 해주었지만 앞으로 사용해야 할 기저귀 값이 만만찮아 걱정이다.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수유하고 있는 윤숙씨는 시로부터 1년간 분유지원도 받아 한동안 걱정은 덜게 됐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동무가 되고 협동하며 배려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운다.
값비싼 장난감대신 책과 문제집으로 공부도 놀이삼아 즐기고 노는 아이들은 꿈도 제각각 야무지다. 방과후 무료특강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사설학원도 다니지 않지만 아이들은 공부도 잘하는 편이다.
선생님 놀이를 좋아하는 9살 연경이는 교사가 꿈이고, 수학을 잘해 초등학교시절 2년동안 수학영재였던 둘째 정빈이는 유명대학교에 입학,공부를 많이 해 과학자가되는 게 꿈이다.
학교에서 방송반 활동을 하고 있는 14살 주은이는아나운서 꿈을 꾸다 지금은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 눈뜨고 대문을 나서면 늘 먼저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감성이 풍부한 소녀로 성장했다.
테크노과학고등학교에서 전문분야 기능인을 꿈꾸는 첫째 호성이는 의젓한 맏형으로 동생들을 잘 보살피기도 한다. 이집에서 유일하게 일반 학원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애살많은 네째 진명이는 수학과 스포츠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일곱째 보영이는 엊그제 막둥이가 태어나면서 엄마의 품을 빼앗겼지만, 인내하고 양보할 줄아는 사랑스러운 꼬마다.
“한번도 아이들 때문에 속 썩어 본 적이 없어요. 시키는 심부름은 무엇이든 마다않고 척척 듣는 아이들 때문에 많아도 어려움 없이 키우고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넷째이후로 친정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윤숙씨는 늦둥이 출산소식도 아직 알리지 못했다고. 얼마전 수술을 받은 친정아버지의 건강도 걱정되지만, 아직 움직일만한 형편이 못돼 마음이 아프단다.
사실 아내 윤숙씨는 10여년전 과로로 쓰러져 뇌출혈 때문에 수술을 받은 적 있다. 늦도록 포장마차에서 일하고 돌아와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솔방울을 따러 산에 나섰다가 쓰러졌던 것. 막내딸 보영이를 낳을때는 피가 모자라 수혈을 받기도 했을 만큼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윤숙씨를 힘들게 하는 건다산으로 인해 몸안의 칼슘과 영양분이 빠져나가면서 치아와 잇몸이하나도 성치 않다는것. 치아가 부서지거나 빠져 제대로 씹지를 못해 늘 소화불량을 겪고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내 한몸 어찌되어도 상관없지만, 정말이지 올 한 해는 경제적인 혁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잘 살았으면 한이 없겠어요.”
소꿉놀이도 지쳤는지 열심히 찾잔을 나르고 음식을 만들던 6살 9살 4살 고만고만한 자매가 이번엔 학습지를 꺼내 풀며 엄마 옆으로 모여든다. 솔직 소탈한 윤숙씨는 품안에 막둥이와 막내딸을 부여 안고 간절한 새해 소망을 털어놨다.
유순희 편집국장
[2010년 2월 10일 제4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