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가정이야기<2> 동래구 백자현·정효숙씨 부부와 육남매
다자녀 가정 일시적 혜택보다 지속적 관심과 지원 필요
“자녀교육 · 급식비 기본적인 걱정만이라도 안하고 살았으면”
“처음처럼”,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반기는 인사말이 눈길을 끄는 아기자기한 둥지같은 집. 육남매를 둔 금슬 좋은 동래구 칠산동 백자현(51), 정효숙(45)씨 부부의 한결같은 사랑은 늘 '처음처럼' 사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큰 딸 승희(17)를 비롯 승진(15), 승균(13), 승연(10), 승명(6), 승엽(4) 등 위로 딸 다섯에 아들하나를 둔 이들 부부는 정작 자신들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하지만 말하기 좋은 뭇 사람들은 "어이구, 아들 하나 낳으려고 내리 딸 다섯을 낳았구만."하고 말한단다.
하기야 의사들도 어지간하다고 말할 정도로 미련스럽게 하늘에 순응했으니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하늘의 선물이었을 것 같단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성이 착한 아내 정효숙씨의 독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이 주는 대로 낳은 셈이다.
신기하게도 위로 넷째까지 낳았을 때 아이들의 첫 말은 모두‘ 엄마’였는데 다섯째, 여섯째는 모두‘ 아빠’라고 부르며 말을 시작했단다.
“행여 아빠가 싫어할까 사랑을 받으려고 했던지 말문을 처음 트는 어린 아기가‘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이 신기해 한 번 더 안아주게 되더라”는 이들 부부는 내리 사랑을 실감하고 있다. 낳고 보니 어느 하나 이쁘지 않은 구석이 없고, 물질적인 부담만 없다면 아이들만 바라봐도 행복하단다.
자식이 많을수록 가장의 어깨는 무거울 터.자식이 하나 늘때마다 남편은 어떠했을까. 셋째까지 그러려니 하다가 넷째를 임신했다고 했을 때는 남편이 안좋아했죠. 식솔이 많다보니 당장 앞일도 걱정되고 가장으로서 부담감이 더욱 커졌으니 오죽했겠어요. 그러다가 다섯째가 덜컥 생기니 그땐 둘 다 자포자기상태였죠."
아내 정씨는 여섯째 막내를 임신했을 때는 정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단다. 심지어 7개월이 될 때까지 병원 한번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두려움 때문에.용기를 내 병원을 찾았을 때 당당하게 남편에게 말할 수 있는 구실을 찾았다. 아들을 바라고 임신한 건 아니지만 내리 딸만 다섯을 낳은 아내 정씨는 "성공하셨네요." 의사의 한마디에 아들임을 직감했고,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이전과는 색다른 기쁨과 가슴벅참을 느꼈다고 말한다.
단 한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초음파 사진을 처음으로 크게 확대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정씨는 그날 밤 예전과 달리 아주 당당하게 남편에게 고했다. "나 임신했어, 아들이래."
그렇게 많은 자녀들 두고도 이들 부부는 또 다름 기쁨을 맛보았단다.
그렇게 많은 자녀들 두고도 이들 부부는 또 다름 기쁨을 맛보았단다.
“ 낳아놓으면 다 알아서 크겠지했죠. 그 어려운 시절에도 예전의 어른들은 8남매 9남매 잘도 키웠는데 어찌 안되겠나 하는 심정으로 일을 저질렀지요.” 그러나 팔순 중반을 훌쩍 넘겨 치매도 있는 시어머니와 좁은 공간에서 육남매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좁은 거실까지 잠자리 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정도로 늘 집은 잔치집처럼 북적대지만, 이들 부부는 사람사는 맛이 나서 오히려 좋단고 말한다.
아이들끼리 나누고 배려하고 아끼고 절약하는 습성을 스스로 터득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가족공동체에서 체험하고 있는 자녀들은 하나같이 밝게 자라고 있어 부부는 다행으로 여긴다.
“대가족이다보니 함께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는 이들 부부는 옥상에 철철이 텃밭을 가꾸어 벼나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산경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반찬거리로도 활용하니 일석이조란다.
"사실 가족이 많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죠.생활비도 그렇고 애들 교육비도 그렇고 모든게 다른 가정보다 몇 배로 더 들어가니 줄이고 안 쓰고 절약하는 일 밖에 대책이 없더라구요."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남편 백씨의 수입이 들쭉날쭉 하다보니 생활은 늘 대책없이 무계획적이 되고 말지만, 아내 정씨의 알뜰살림 노하우로 그런대로 견디며 살고있다.
6남매는 그 흔한 학원 근처에도 보내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물려받은 책을 나눠 보며 스스로 공부해왔다고.
“안타깝죠. 큰 애는 중학교 다닐때까지만해도 혼자 공부해서 2,3등 정도는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고 부터는 학원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팠다”는 정씨는시험기간에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대는 동생들 때문에 큰애들이 공부에 지장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독서실 보낼 형편이 아니라 부모로써 책임을 다 못해 늘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예전에 아이 하나낳기 운동이 한창일 때, 예비군 훈련가면 정관시술 받을 사람들의 자원 신청을 받기도 했는데 대부분 훈련받기 싫어 우루루 몰려가 시술을 받기도 했다"는 백씨는 그때 시술을 받았더라면 지금 여러명의 자녀들로부터 받는 기쁨과 행복을 절대 못 느끼고 살았을 것 같단다.
생활이 어렵지만 아내 정씨는 지난 십 수 년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맞벌이는 엄두도 못냈다. 결혼하기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은 있지만 막상 일을 하려니 시간과 임금이 마땅한 직업이 없더라는 것. 그래서 정씨는 여력이 된다면 요양보호사자격증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지금은 형제들이 십시일반 요양원에 모시기도 하지만 그동안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도 모셔봤고, 가까이에서 모시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어른들 보살피는 일은 보람도 되고 경제적 보탬도 되는 유익한 경제활동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어려운 살림에 수 십 만원이 넘는 교육비 마련이 고민되기도 하지만 내년 초에는 이 소박한 꿈을 꼭 실현시키고 싶단다.
“다자녀가정에 대한 혜택이 많이 생겼지만,실질적인 지원을 별로 받지 못했던 것 같다”는 이들 부부는“ 모든 다자녀 가정이 교육비만이라도 신경쓰지 않도록 해주었면 좋겠다”고.
큰 딸이 고등학교 진학하고부터 수업료나 급식비도 만만찮은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정씨는“ 외국처럼 출생년도도 제한을 두지말고 학업 중에 있는 모든 다자녀가정의 아이들이 고루 교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출생 시 꽃다발을 전해주고 몇 십 만원을 준다고 해서 평생 자녀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다자녀가정이라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이들 부부의 말처럼 실질적인 지원과 대책없이는 팍팍한 세상에 적게 낳아잘 기르겠다는 신세대들의 가치관을 말릴 도리가 없을 듯하다.
가족이라는 작은 집단속에서 발생하는 매일 색다른 화제거리로 심심할 날이 없을 정도라는 이들부부는 자녀들끼리 생일을 서로 축하하고 작은 파티를 여는 정겨운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낀단다.
비록 살림은 팍팍한 살림에 물질적 궁핍도찾아오지만 화목한 울타리안에서 매번 거뜬히 견뎌온다. 없지만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등산을 즐기고,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부부교실에도 참가하고, 축제가 열리는 계절에는 온가족이 단합하여 옷을 맞추어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유를 지녔다.
긍정적인 삶으로 날마다 한 움큼 행복의 더미를 쌓아가는 백자현 정효숙 부부와 육남매의 씩씩하고 밝은 모습에서 색다른 풍성함이 느껴진다.
유순희 편집국장
[2009년 12월 23일 제 2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