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꿈과 희망을 향한 원초적 리듬과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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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하면 우리는 정열이라는 단어를 우선적으로 떠올린다. 왜일까?
 
우리는 직접 가보기도 전에 매스컴을 통해 이미 강렬한 리듬의 화려한 축제에 열광하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만났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을 비집고 들어온 라틴댄스는 친숙한 여가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 생활하면 춤은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언어임을 절감하게 된다.라틴아메리카를 정열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뇌가 인식하게 된 것은 아마도 춤과 음악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라틴 음악과 댄스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음악이 댄스이고 댄스가 음악장르이기 때문이다. 춤과 음악을 떼어내고 라틴아메리카의 일상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소주 없는 한국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지않을까?

‘살사댄싱’ 영화에 등장해서 선보였던 띠또 뿌엔떼(Tito Puente)의 전설적인 연주, 살사의 여왕 셀리아꾸르스(Celia Cruz)의 혼이 담긴 노래 그리고 영화 ‘치꼬와 리따’에서 선물처럼 들려온 베보 발데스(Bebo Valdez)의 피아노 연주는 라틴리듬이 세계적 감성임을 증명해 주었다.

새천년을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이야기를 잔잔한 언어로 쏟아내는 백발의 노장들이 나타났다. 한 때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기타의 거장 꿈빠이 세군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루벤곤살레스 그리고 신이내린 목소리 이브라힘 페레르와 오마라 뽀르뚜 온도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그룹으로 만나 세상을 향해 자신의 꿈을 펼쳐놓았다.

평균연령 70세 노인들에게 전 세계는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래는 3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라는 기록과 함께 쿠바음악의 열풍을 다시 한 번 몰고 왔다. 잊을 만 하면 열풍을 몰고 오는 라틴 음악과 춤의 흡인력은 어디에서 부터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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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소리 감성의 몸짓 언어
정열의 리듬 이방인 매혹시켜
춤과 노래는 지친노예 마음의 보상
 
인간의 삶과 함께 시작된 태초의 소리와 인간이 언어로 대신할 수 없는 감성이 몸짓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멕시코와 안데스 산맥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우리의 감성에 애절함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카리브해 지역과 브라질 음악이 노예로 아메리카에 정착한 아프리카인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꿈과 희망을 들려 준다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탱고리듬은 유럽 이방인의 애수와사랑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라틴 음악과 춤은 인간이 언어로 표현할 수 영역과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넘나들며 인간 내면에 깔려있는 감성을 자유롭게 밖으로 이끌어 준다. 때론 원조적인 리듬과 몸짓으로 때론 애환과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그 모든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화가 원주민과 백인 그리고 흑인의 만남을 통한 혼종성을 띠고 있듯 음악 역시 다양한 색채를 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리듬은 현대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예로 아메리카에 정착한 흑인들의 삶은 희망과 꿈이 어둠에 가려진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포기 할 수도 그저 버려둘 수도 없었던 노예로서의 삶에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여흥이 아닌 삶을 지탱해주는또 다른 언어였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던 소리,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두드렸던 돌멩이 소리 그리고 풍요로운 추수에 손뼉 치고 휘파람 불며 신에게 감사드리던 아프리카에 대한 먼 기억은 새로운 소리로 탄생되었다.

모래를 담고 있는 표주박 모양의 마라까스, 빨래판처럼 홈이 파져 긁어서 소리를 내는 구이로그리고 둔탁하고 경쾌한 뚬바도라와 봉고 같은 타악기가 만들어져 우리에게 살사와 차차차, 맘보와 룸바를 선사해주었다.
 
노예들은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폴리리듬을 통해 희망을 기원했고 당기는 듯한 싱코페이션 리듬속에 절망을 토해내었다. 노예들의 휴식은 하나의 종교 의식과도 같았다. 영국 식민지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노예들의 드럼 사용을 금지했으나 프랑스 식민지였던 뉴 올리안즈의 광장은 일요일마다 드럼을 연주하는 흑인들로 북적되었다.
 
스페인·포르투갈 식민지에서는 오히려 노예들의 춤과 음악이 장려되었다. 노예들의 휴식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탕수수 재배가 집중되었던 쿠바와 브라질은 다양한 타악기가 만들어져 연주되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에서 흑인들은 혁명을 주도하며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를 계기로 식민지배자들은 스페인 식민지도 미니카공화국을 통과하여 쿠바의 산띠아고로 도주했다.
 
이러한 역사는 쿠바음악에 프랑스풍의 리듬이 가미되고 변형되어 다양한 음악으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6/8박자의 끌라베, 끄리오야, 과히라와 2/4박자의 단사, 아바네라 그리고 띰발레스와 구이로에 의한 싱커페이션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단손 등 쿠바 고유의 리듬과 춤이 등장하였다.

20세기 초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아프리카리듬의 유산이 유럽화와 문명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신념이 팽배했다. 거리의 연주와 흑인의 종교축제가 금지되었고, 일부 뮤지션들은 반 흑인주의 정서를 드러내면서 의도적으로 음악에 아프리카적 요소를 배제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쿠바에서 아프리카 리듬을 유지한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흑인 민속춤을 모태로 룸바가 탄생하였고 이후 맘보, 차차차가 등장하였다. 해질 무렵 사탕수수 농장의 고된 하루가 끝나면 노예들은 불을 지폈다.
 
쇠사슬로 묶인 두 다리는 절뚝 거릴 수밖에 없었다. 노예들은 원을 그려 불 주위를 돌며 북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의 신을 불러 모았다. 아프리카로부터 신들이 건너와 이들의 부서진 심장을 어루 만져주고 잘려진 손가락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잠시나마 노예들의 지친 몸과 마음은 보상을 받는다. 쇠사슬에 묶여 절뚝거리던 노예들의 걸음은 엇박자의 라틴댄스 스텝으로 되살아났고, 돌과 나무를 두드리며 감정을 교감하던 소리는 다양한 타악기로 재생되었다. 영원한자유를 꿈꾸던 노예들의 희망은 음악과 춤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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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면 어느새 사람들이 모인다. 어디든지 상관없다. 직업도 연령도 문제되지 않는다. 리듬에 몸을 맡긴이들의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춘 이방인의 감성마저도 밖으로 표출된다. 라틴아메리카를 여행 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낮선 이들의 손을 잡고 리듬에 함께 어우러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일상에 지친 나의 감성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 봄, 삶의 에너지로 충만한 셀리아 쿠르스의 라 비다 에스 운 까르나발(La vida es un Carnaval: 인생은 축제이다)을 들으며 삶은 결코 살아내야 하는 아름다움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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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30일 제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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