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미교수의 라틴아메리카이야기>① 라틴아메리카를 만나다
잉카문명의 보고, 페루의 마추픽추. 라틴아메리카는 원주민 문명과 유럽문명과의 만남이 혼재돼 독특한 문화를 이룬다.
2002년 미국의 소수민족으로서 히스패닉은 흑인을 능가하여 제1의 인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25년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히스패닉은 미국의 주류인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492년 컬럼부스(Cristobal Colón)의 항해 이후 스페인(España)과 포르투갈(Portugal)을 통해 파괴와 갈등 그리고 공존의 시간이 겹쳐져 형성된 대륙 라틴아메리카(Latiamérica)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도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다가섬을 외면할 수 없으며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과 공감의 장을 나누어야만하는 순간에 서 있다.
생각과 행동사이의 간극을 좁혔던 실천적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가 한때 우리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나라로부터 유입되었는지알지도 모른 채 살사와 자이브 그리고 탱고 등 라틴 춤과 음악은 어느새 자연스럽게우리의 일상 안으로 성큼 들어와 있다.
서점을 가득 메운 라틴아메리카 여행서는 태초의 신비스런 자연으로 때론 열정의몸짓과 순수의 얼굴로 우리의 낭만을 자극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에게 여전히 그저 막연한 대상이며 지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또한 좁혀지지 않는 멀기만 한 땅으로 머물러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통상적으로 중미와 남미 그리고 카리브 해 15개국을 포함한 33개국이 위치한 지역을 말한다. 그래서 중남미라고도 불린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파마나(Panamá)까지를 중앙아메리카라고 한다. 멕시코(México)는 지리적으로 북미에 위치하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 중미국가에 속한다. 남미는 콜롬비아(Colombia)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Argentina)까지를 일컫는다.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의 이베리아반도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이베로아메리카(Iberamérica)’ 라고도 불린다. ‘중남미’, ‘이베로아메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는 모두 동일한 지역을 일컫는 명칭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는 15세기말 이후 ‘라틴 (Latin)’과 ‘아메리카(América)’의 만남을 통한 정복과 식민, 파괴와 공존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지역은 인종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혼종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대륙으로 성장하였다.
300년 식민의 역사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원주민 문화와 유럽문화의 충돌로 생긴 혼종성이 강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가 특별한 대상으로 세계인의 지성과 감성을 사로잡는 이유도 바로 시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원주민 문명과 서양 유럽문명의 만남과 길항 그리고저항과 대립을 거쳐 공존하게 된 역설의 대륙이기 때문인 것이다.
중남미와 카리브해 15개국 등 33개국
원주민 문명과 서양유럽문명의 만남
구매력과 성장 잠재력 큰 매력적인 시장
여기서 기억해야할 것은 ‘라틴’과 ‘아메리카’의 만남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 이미이 땅에는 세계 문명사에 공헌한 마야(Maya), 아즈텍(Aztec) 그리고 잉카(Inca)문명이 성장, 발전하였다는 점이다. 마야는 오늘날 멕시코의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과테말라(Guatemala), 온두라스(Honduras), 엘살바도르(El Salvador), 벨리세(Belice) 등 중미와 북미일부지역으로확장된 문명이었으며, 아즈텍 문명은 멕시코 중앙고원지대를 중심으로 중미지역에 영향을 미친 원주민 문명이었다.
잉카문명은 페루 (Perú)의 쿠스코(Cuzco)를 중심으로 남미 안데스 산맥지역국가인 콜롬비아, 베네수엘라(Venezuela), 에콰도르(Ecuador), 볼리비아(Bolovia), 칠레(Chile)로 확장되어 번성한 문명이다. 이러한 원주민 문명은 유럽문명과의 만남을 통해 파괴되고 철저하게 배제되었으며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를 이어갔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종속과 자립 그리고 번영과 빈곤이 공존하여 겹쳐진 시공간라틴아메리카는 낭만적 관심과 실용적 수요가 더해지면서 최근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04년 칠레와의 FTA체결을 시작으로 페루와 콜롬비아 그리고 멕시코 등 태평양연 연안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날로 확대되어가는 경제협력관계는 라틴아메리카지역이 5억 6천만 인구의 구매력과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북미보다 많은 무역흑자를 기록한다는 실용적 차원에서도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멕시코의 경우 중국, 홍콩,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4위 무역 흑자국이다. 더욱이 최근 세계적 자원수요의 확대로 수급상황이 악화되어 자원 확보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대한 석유와 자원을 가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세계외교에서 라틴아메리카지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간과할 수 없다.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는 33개국의 집단협상력은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유효한 외교수단이 되고 있다.
1960년대의 쿠바혁명과 군사독재, 1970년대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 198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개혁과 민주화, 1990년대 과거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사회운동과 원주민운동의 부흥 그리고 2000년 들어 좌파정권의 출현 등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역동성은 늘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라틴’과 ‘아메리카’ 문명의 만남이후 지속된 중속의 역사 그리고 소수의 번영과 다수의 빈곤이라는 두 얼굴을 가장 먼저 경험했던 이 지역은 동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왔다.
이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역동성은 유럽과 아메리카의 가치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었던 사회와 문화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혼종성’은 서로 다른 이질적문화가 만나게 되는 불가피한 지구적 삶을 살아가는 현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라틴아메리카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를 상징하는 주요 일상문화 키워드(도시, 커피, 설탕, 춤과 음악, 그림, 축구)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시공간이 만나 겹쳐진라틴아메리카 대륙에 가까이 다가서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는 멀리 있는 대륙으로 남겨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차경미(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2015년 8월 26일 제67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