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9일

세기의 로맨스

시대와 사회, 국경을 초월한 불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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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그녀의 출생과 성장과정, 거리의 가수에서 당대 최고의 무대에 서기까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압권은 애절하면서도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 노래와 사랑에 대한 열정이었다. 프랑스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었던 그 삶의 베일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먼저 거리가 왜 제2의 집이 된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자. 에디트 아버지 가시옹은 엽색가로 소문난 남자였고, 그런 탓에 아버지 모를 아이가 태어나면 으레 그의 짓으로 여겨졌다.
 
그가 에디트의 어머니인 린 마르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15세의 소녀로 성 불능을 치유할 온갖 방법을 찾던 변태적인 한 늙은이와의 1년간의 결혼 생활을 막 청산하고 나서였다. ‘두 손과 머리로 걷는 남자’인 곡예사 가시옹과 거리의 싸구려 여가수인 마르사 사이에 태어난 에디트는 하루 밤의 성적욕망을 풀려는 사람들의 ‘희생화’였는지도 모른다.
 
제도권 밖에서의 방종과 일탈을 일삼는 이들 사이에 태어난 에디트는 한 말로 뿌리뽑힌 삶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할머니에게 맡겨질 땐 그녀의 술친구로 포도주에 절여있었고, 친할머니에게 양육될 땐 두 살 반이었는데 할머니는 창녀촌, 즉 유곽의 포주였다. 각막염에다 영양실조로 창녀촌의 눈 먼 아이로 자라다가 6세 때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이 모든 상황은 앞으로 전개될 예사롭지 않을 삶의 신호탄인 듯하다.
 
더 잃을 것도 없는 밑바닥 생활, 거리의 소녀에서 거리의 가수, 10대 후반에 낳은 딸을 잃은 일, 쉼표 없는 남성 편력 등이다. 한 때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단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구경꾼을 웃기면 어린 에디트는 모자를 들고 다니면서 돈을 구걸하게 하다가 별 묘기가 없던 딸에게 그냥 노래 부르게 한 것이 인생의 대역전이 될 줄이야. 어둠을 뚫고 강렬히 일어서는 태양이 예고되는 기회를 만난다.
 
에디트가 거리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노래할 때 한 남자가 진지하게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전광석화처럼 나타난 남자. 그는 루이 르플레로 카바레 자니스의 지배인이었다. 그 때의 카바레는 일종의 사교장으로 188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어 그 곳은 공연을 보며 모임을 가지는 장소였다.
 
그녀의 재능을 간파한 루이는 거리의 가수에게 무대의 가수로 격상시킨 인물이었다. 스무 살의 에디트는 자니스의 무대에서 라 몸 피아프로 다시 태어났고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그를 돌봐준 루이는 칼에 찔린 채 거실 바닥에 누워있던 살인 사건이 발생함으로서 피아프가 연루되었다는 경찰의 의심과 함께 사람들의 외면과 야유를 받게 되어 난관에 처했다.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나 손을 내밀어 주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지식과 교양을 갖춘 레이몽 아소였다. 야생마처럼 제멋대로인 그녀에게 에디트 피아프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다이아몬드 원석을 다듬듯 빼어난 고품격으로 창조해 나갔다. 그는 무기력한 그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은인이자 스승이며 연인이 되었다.
 
추락한 가수를 유명한 뮤직홀 ABC 무대에 데뷔시킨 레이몽 아소. 무대 위에서 에디트의 노래는 불꽃같은 에너지를 활활 쏟으며 명성을 날렸지만 에디트가 커질수록 점점 불안해지는 아소. 자신이 버림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곧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아소와는 결별했고, 아소는 의용군 자격으로 2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다. 남자 없인 음악도 없고 인생도 없다던 그녀에게 다음에 나타난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녀의 새 애인은 가수 겸 배우인 폴 모리스였다. 그녀는 새 애인을 위해 큰 아파트를 얻어 열정과 애착을 쏟았지만 그는 이 사랑을 부담스러워 했고 그녀 앞에 냉담했다. 이 사랑도 모리스가 2차 대전에 소집됨으로서 끝이 났다. 다시 소강상태에 빠진 그녀에게 장밋빛 꿈으로 나타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이브 몽탕이었다. 본명은 이보 리비. 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르세유에서의 공연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부두노동자 출신이며 카우보이 흉내 내기를 즐겼던 신인가수인 이브에게 빠지면서 그에게 이브 몽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를 눈부시게 성장시켰다.
 
그는 에디트의 새로운 애인이자 예술 작품이었다. 에디트와 몽탕은 침대의 공유를넘어서 무대와 명성도 공유했다. 6살 연상인 에디트의 도움으로 소원이던 영화계도 진출하여 배우와 가수로서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그들의 사랑이 꽃처럼 피어났을 때 에디트가 작사, 작곡한 노래 <장밋빛 인생>은 그녀의 대표곡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브몽탕은 그녀를 떠나 새처럼 날아갔다. 밀물처럼 오고 가는 사랑의 자리에 우람하게 오고 있는 사랑의 남자. 그 남자는 바로 마르셀 세르당이였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사랑을 느꼈고, 에디트에게 심장의 고동소리를울리게 했다.
 
그는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기혼남이고, 세계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에 빛나는 권투선수였는데 수줍은 얼굴에다 따뜻한 눈빛을 가진 호남형이었다. 서로의 존재자체가 무한 힘을 부여했다. 일 분 일초라도 연인 곁으로 빨리 가고 싶어 배 예약을 취소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녀에게 가려다가 1947년 10월 27일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아픔, 이 애절한 사랑을 노래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로 오직 세르당을 위한 노래였다. 그렇지만 에디트의 사랑은 장미넝쿨처럼 뻗어갈 뿐 멈출 수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것인가? 마르셀의 죽음 이후 술, 수면제, 신경안정제, 마약 등을 복용하며 그의 부재를겨우 견디고 있을 때 노래를 가지고 온 남자. 그는 자크 필스였다. 그 때 에디트는 36세 그는 46세였다. 둘은 1952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 후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부르며 성공했고, 색다른 체험을 했다. 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약물중독과 의심증으로 결국 사랑을 잃고 만다.
 
결혼한 지 4년만이었다. 이렇게 사랑에 버림받고 병든 몸으로 죽어가고 있던 그녀를 회생시켜준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를 일으키게 한 노래 <주인님>을 작사한 조루즈 무스타키였다. 이 노래는 그녀를 유럽의 인기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뉴욕으로 가는 차를 운전한 그는 결국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에디트는 벌써 네 번째의 교통사고를 당한 셈이다. 점점 망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을 느끼던 그녀는 열아홉 살이나 어린 조르주를 자유롭게하고 싶어 했고, 그들의 사랑은 막을 내린다.
 
약물에 중독되어 죽어가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사람들에게 에디트 모습의 궁금증을 부채질 했다. 이 때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로 그녀가 부활하는 순간이었고, 구원의 노래였다. 올랭피아 무대에 울러퍼진 또 하나의 기적인 그녀의 노래는 ‘프랑스 불멸의 목소리’로 기록되게 했다.
 
음악은 언제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26세의 미용사였고 키가 큰 소년 같은얼굴의 테오파니 랑부카스였다. 에디트는 마흔이 훌쩍 넘어있었지만 존경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청년에게 마음이 다가갔고 얼마 후엔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한다. 그에게 테오 사라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사랑을 주저 없이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마침내는 두 사람이 함께 올랭피아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관객의 열렬한 기립박수 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공인받았다. 사랑에 뜨거웠던 에디트는 남편을 사랑했다. “테오와 함께 몇 주만 더 살 수 있다면”이라는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48세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사망한 지 7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에디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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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4일 제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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