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성(詩聖) 단테 알리기에르(Dante Ali.hieri)는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Beatrice Portinari)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최초의 전기 작가였던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에 의하면, 단테의 어머니는 그를 잉태하면서 월계수 아래 풀밭에서 단테를 낳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꿈은 단테의 예사롭지 않는 운명에 대한 전조로 보인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보는 순간 “그때부터 사랑이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단테의 운명으로 존재한다. 단테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9살이었고, 그녀도 갓 9살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 만남의 순간을 그는『새로운 인생』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홉 살이 끝나 갈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그 날 그녀의 악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은은하고 예쁜 주홍빛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영혼의 끌림은 강력한 형질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작용을 한다.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잠재력을 발견해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가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의 영혼에 끌리고 아름다움에 공명함으로서 구원과 영감을 얻게 되었고, 세계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걸작『, 신곡』을 탄생시킨다.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인생』,『 신곡』 은 그와 베아트리체의 영혼이 결합되어 탄생된 생명체로 볼 수 있다. “육체적 욕망이 억제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랑의 강렬한 상상력”이 이루어 낸 업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가 신의 세계를 상상했다는 점이다. 첫 만남에서 그들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다만 서로를 응시했을 뿐인데, 이 응시를 어린 소년 단테는 9년 동안 기억했고,『 신곡』의 <천국편>에서 하느님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는 것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의 사랑과 이로 인한 신의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으로도 그녀에 대한 찬미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그는 아쉬워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표현될 수 있는 사랑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아주 적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그가 베아트리체에게 반한 것은 ‘인사', '미소’, ‘시선’이었다. 그런데 단테의 운명에 전기를 일으켰던 두 번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재회 후 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살펴보자 그렇게 함으로서 그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그의 저서『 새로운 삶』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도 강가에서 두 친구와 함께 걷고 있던 그녀를 만났는데 시간은 오후 3시였다고 한다. 마침 그의 앞을 지나가던 그녀는 그가 마음 졸이며 서 있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 때 그녀는 말로는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예의를 갖추며 너무나 정숙한 자태로 인사를 보내왔기 때문에 그는 그때 그 자리에서 진정한 축복의 정점을 본 것 같았다고 토로한다.
그는 그녀와의 재회 이후 즉시로 “마치 취한 사람처럼 자기방의 한적한 공간으로 돌아와 이 지극히 공손한 여자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9시간에 걸쳐 꿈을 꾸었는데, 거기서 사랑의 신의 팔에 안긴 벌거벗은 그녀가 그의 심장을 먹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단테는 이 꿈에서 영감을 받아 무수한 시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해석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미덕, 그녀의 놀라운 영향력에 대해 소네트(14행으로 된 연가)를 쓰기도 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베아트리체는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정혼한 사람과 결혼하지만 단테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그녀와 재회한 7년 후 그녀가 병사해 버리고 만다. 그녀의 죽음이 남긴 좌절과 눈물, 그리고 고뇌 속에 빠지면서 문학을 통해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향해 영혼을 불태웠던 사랑은 불후의 명작『 신곡』 등으로 영원히 삭지 않고, 그녀와 함께 부활하고 있다.
아무런 대화가 없는 ‘응시’만으로도 “생명의 기운이 요동쳐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 떨리기 시작”하는 체험이나 재회 이후 그녀에게서 받은 “너무나 정숙하고 달콤한 인사”는 강력한 상상력과 영감으로써 문학작품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와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생명력을 주는 세기의 로맨스로 존재하고 있다.
[2015년 1월 23일 제60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