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8일

세기의 로맨스

사랑 때문에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여성 조각가

조동숙의 세기의로맨스<10>
 
13-1 세기의로맨스-카미유와 로뎅.jpg
 
 
카미유 크로델이 거장 오귀스트 로댕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 그를 찾아갔던 해는1883년 그녀의 나이는 19세 때였다. 그런데 그녀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용모에서 특히 빼어난 곳은 짙푸른 눈동자에 담긴 신비스러움이었는데 중년으로 접어든 로댕은 새로운 두근거림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다 똑똑하고 언어감각과 재능이 돋보이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그는 곧 카미유를 그의 작업실에서 일하게 하고, 비서의 역할도 시키면서 <사색> 흉상 등의 모델이 되게도 하는데, 그 후론 누드모델이자 애인이 된다. 카미유는 로댕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이며, 그의 작업을 돕는 인재 반열에 올라선다.
 
로댕은 그녀를 ‘봄의 여신’이라 호칭하면서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둘의 사랑은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카미유의 전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자신을 메트리스, 즉 그의 정부로, 그는 그녀의 주인이자 스승으로 생각할 정도로 경도된다. 그녀는 로댕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발견한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 친구. 연인인 남자를. 그만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세계였다. 로댕도 이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영원한 조각상’을 만들어 길이 남기고자 했다. 바로 초기 작품인 <사색>, <이별> 등을 통해 카미유의 얼굴이 명작 속에서 영원히 빛을 발휘함으로서 그의 의도가 실현된 셈이다.
 
특히 <사색>에서는 그녀의 표정을 감성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한다. 그런데 <이별>은 카미유가 그를 떠나던 시점인 1892년에 완성된 조각이다. 로댕은 또한 카미유에게 예술가로서의 그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삶의 호기심, 활력과 자부심이 넘쳐나던 그녀는 날이 갈수록 로댕을 향한 열정과 독점욕이 집요해 진다. 로댕의 동거녀인 로즈 뵈레와 영원히 헤어지고, 자신과 결혼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로즈는 어떤 여자인가? 로즈와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희비를 공유하면서 그의 아들까지 낳은, ‘참으로 순종적인 여자’라고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로댕의 무명시절부터 옷 수선 가게에서 일하던 그녀를 만나 모델에서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그가 어떤 애정행각을 벌여도 괴로움을 안으로 삼키며 묵묵히 내조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눈부신 미모와 재능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로즈의 존재는 결코 오를 수 없는 산과 같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카미유는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로즈와 헤어지고 그녀와 결혼해서 살겠다던 그의 약속도 공수표가 된 마당이었다. 그녀는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자신의 모든것을 다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댕은 로즈와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참으로 순종적인 로즈에 비해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뿐더러 그는 그녀를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을 것을 깨달았기에 카미유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라고 해도 어색한 미소만 띄며 아무런 말이 없었던 그가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그녀가 로댕의 태아를 네 번이나 유산을 시켰다는 추정이 지인들에 의해 나돌기도 했다. 그녀는 온 세상이 음모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로댕, 로즈, 카미유 이 세 사람은 아무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겠지만 누구보다도 고통 속에서 홀로 방치된 사람은 카미유였다. 하지만 9년 동안 그의 정인(情人)이자 분신의 역할을 하면서도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려 애썼던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이런 고통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형상화된 조각들 <로댕의 흉상>, <사쿤탈라>가 출품되었던 첫 전시회는 그녀에게 성공을 안겨주었다. 고통 받고, 뒤틀리고, 애원하는 듯한 육체를 드러낸 그녀의 조각품은 인간비극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면서 조각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간다. “여성적인 천재성의 모습 구현”이라든지 “천재 로댕의 흉내에 불과”라는 평가가 그것을 방증한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로댕과의 관계아래 조명하려는 평단의 몰이해를 불쾌하게 여기면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며, 이를 묵인하는 로댕을 극도로 증오하게 된다.
 
하지만 로댕의 곁을 떠나 완전히 결별한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해 뫼동 숲속에 숨어 그를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녀를 발견한 로즈는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내쫓아 버린다. 문제작 <성숙>은 늙은 여인에게 이끌려가는 늙은 남성을 향해 애원하듯 젊은 여성이 팔을 뻗고 있다.
 
로즈, 로댕, 자신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며, 로댕과 결별한 후 자신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사랑의 열병을 끄지도 못한 채 로댕과의 이별은 오히려 광적인 집착과 치명적인 고통 속으로 빠지면서 신경쇠약, 발작적 행동, 로댕에 대한 피해의식 등 병적이고 염려스러운 징후들을 유발시켰다.
 
그녀의 눈빛은 날로 혼란스러워 갔다. 카미유는 로댕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고,그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한다고 확신했다.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도용하고 자신에게 독을 먹여 죽이려 한다는 것이며, “악마같은 로댕의 머릿속에는 내가 자신을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뫼동의 황제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고, 뭇 여성들에 둘러싸여 연모와 숭배를 받고 있는 반면에 그녀의 삶은 처참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지지자이며 후원자였던 부친마저사망하자 가족들에 의해 속전속결로 처리되어 바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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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3월 10일 49세 때였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간 그 후, 30년이란 긴 세월을 절대고독의 철창 안 무서운 감시 속에서 갇혀 지내게 된다.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철저하게 버림받은 카미유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 1943년 10월 19일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나이는 일흔 아홉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가족 중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은 채 벅찬 생애와 하직하고 만다.
 
 한편 로댕과 로즈는 70대에 들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결혼식을 올렸고, 카미유 크로델의 아픈 운명이었던 로댕은 1917년 11월 18일 영면한다.
 
 
[2015826일 제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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