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의 7080팝이야기<27>
팝/컨트리싱어 슈 톰슨 (Sue Thompson)은 1926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튀는 노래 실력은 물론 기타도 곧 잘 다뤄 일곱 살 때 첫 무대를 밟은 그녀는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 산조세(San Jose)로 이사를 가 TV 쇼에 출연하는 등, 남들보다 일찍 가수 데뷔식을 치렀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 중반, 그녀 나이 스무 살에 결혼을 하였고 딸 하나를 보았다. 하지만 가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혼 3년 만에 파경을맞고 만다. 이혼의 아픔을 떨쳐내려 그녀는 캘리포니아 클럽가에 몸을 던졌는데 우연히 출전하게 된 ‘산 조세 탤런트 쇼 선발 대회’에서의 우승은 그녀에게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런 슈 톰슨의 모습은 한 밴드의 리더이자 당시 잘나가는 라디오/TV 진행자였던 듀드 마틴(Dude Martin)의 이목을 끌었고, 듀드는 톰슨을 자신의 밴드로 초대하기에이른다. 둘은 결국 결혼까지 하게되고 음악 취향이 엇비슷했던 터라‘If You Want Some Lovin’같은 듀엣곡을 남기기도 했다.
든든한 배우자를 얻은 톰슨은 이 상태라면솔로 활동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머큐리 레코드(Mercury Records)사와 계약하였지만 1년 뒤 그녀는 두번째 이혼을 해버린다. 그 후 다시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행크 페니(Hank Penny)와 재혼해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사와 계약하고 혼자는 물론 남편과도 함께 녹음을 감행하며 자신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나갔다.
그러던 60년대, 톰슨은 히코리 레코드(Hickory Records)에 둥지를 튼 뒤 작곡자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를 만나 그녀의 대표곡 ‘Sad Movies (Make Me Cry)’를 발매해 미국 팝 차트 5위안에 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차트 3위까지 오른 후속곡 ‘Norman’도 잇따라 히트하며 수 톰슨은 가수 인생의 최고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1962년에 발표한 싱글 “Have a Good Time”이 실패하면서 슈 톰슨의 인기는 사라지게 된다.
70년대 초엔 컨트리 싱어 돈 깁슨(Don Gibson)과 함께 작업해‘I Think They Call It Love’, ‘Oh, How Love Changes’ 정도를 히트시켰으나 개인적인 재기는 이루지 못했다.
비록 전성기를 일찍 접긴 했으나 수 톰슨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녀는 일흔 살을 넘긴 90년대까지도 라스베가스 카지노와 헐리우드 클럽 무대에 종종 서곤 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슬픈 영화는 항상 날 울게 만들죠.
그는 일해야한다고 해서, 전 영화를 보러갔죠.
불꽃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가고 해외뉴스가 막 시작할 때
그는 일해야한다고 해서, 전 영화를 보러갔죠.
불꽃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가고 해외뉴스가 막 시작할 때
그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걸어들어 오는 걸 봤죠.
내가 바로 근처에 있었지만 그들은 절 보지 못했죠.
그리고 제 앞자리에 앉았고 그리고 그이가 친구에게 키스할 때는 거의 죽고 싶었죠.
총 천연색 만화영화 중간에 난 울기 시작했죠.
(오 슬픈 영화는 항상 절 울게 하죠.)
(반복)(반복)(반복)(반복)
그래서 살며시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왔죠.
엄마는 눈물을 보고 말했죠.
‘뭔 일 있었니?’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그냥 슬픈 영화 때문에 라고 말했죠
내가 바로 근처에 있었지만 그들은 절 보지 못했죠.
그리고 제 앞자리에 앉았고 그리고 그이가 친구에게 키스할 때는 거의 죽고 싶었죠.
총 천연색 만화영화 중간에 난 울기 시작했죠.
(오 슬픈 영화는 항상 절 울게 하죠.)
(반복)(반복)(반복)(반복)
그래서 살며시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왔죠.
엄마는 눈물을 보고 말했죠.
‘뭔 일 있었니?’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그냥 슬픈 영화 때문에 라고 말했죠
(반복)
[2016년 7월 15일 제78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