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0일

노래로 불러본 천년의 사랑

“괴로운 일생이 한바탕 꿈이 있네”

노래로 불러 본 천년의 사랑 <8> 조신과 김씨 낭자
 
 
조신과 김씨 낭자<스님과 귀족낭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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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끝내 가을의 배반으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가을 역시 석양 가장자리에 자리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동장군이 출현할 것이라는 내일의 눈이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가을의 상징물인 단풍 잎 역시 수액의 불충분 공급으로 생겨나는 자연현상임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고나면 낭만이라고는 티끌만큼도 가지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것이 자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가을이라고 매일 바바리코트의 깃을 올리고 슬픈 사슴 눈으로 껌뻑거려보았자 찰나의 순간만 허락하고 저 멀리 떠나버리는것이 시간의 유한성이라고 할까? 때는 신라시대 세달사의 장원이 명주 날리군(지금의 영월군, 춘천등으로 알려져 있다.)에 있었다. 본사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하였다.
 
어느 날 조신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는 넋이 나가 버렸다. 그 날부터 조신은 먹어도 먹지 않았고, 자도 자지 않았다. 하루 종일 법당 앞을 지키며 관음보살전에 손금이 없어질 정도로 빌고 또 빌었다. 내일이면 나타날 것 같은 그 아름다움은 바로 태수 김흔의 딸 김씨 낭자였다. 보름날 밤이면 달님께 그믐날 밤이면 별님께 아침이 밝아오면 해님께 빌기를 수 삼년, 그사이 김씨 낭자에게는 덜컥 배필이 정해지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조신은 관음보살전으로 가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아니한 것을 원망하면서 해가 저물도록 슬피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꿈에 그리던 김씨 낭자가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낭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면서 “제가 일찍이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된 뒤부터 마음속으로 사랑해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지요. 그러나 부모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어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었답니다. 이제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힐 벗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왔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조신은 몹시 기뻐하며 함께 절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림을 하며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들은 둘에게 세상의 욕정을 다 소비할 듯이 매일 살을 부비며 오직 욕정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밤이면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오직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다가 아침을 맞곤 하기를 수년 째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40년이나 흐른 것을 알아차린 건 정신을 차리고 난 뒤였다.
 
집은 네 벽만 있을 뿐이고, 밥은 커녕 나물죽마저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낮 그 짓만 했을 뿐 농사나 품팔이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에 쌀 톨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제야 정신은 차린 조신과 낭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유리걸식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10여 년 동안 천촌만락을 헤매다 보니 옷은 누더기요 몸은 짐승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열다섯 살 먹은 큰 아이가 굶어 죽고 말았다. 조신과 남은 가족들은 슬피 울면서 명주 해현고개 길가에 고이 묻어주었다. 부부는 늙고 병이 들었고 또한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자 열 살 먹은 딸이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구걸을 나갔던 딸이 동네 개에게 물려서 아파 울부짖으며 드러눕자 조신과 낭자는 한숨을 쉬며 두 줄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울어보아도 세상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안 낭자는 울면서 조신에게 말을 꺼내었다.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꽃다웠으며 옷도 깨끗했지요. 한 가지라도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당신과 나눠먹고, 두어 자 따뜻한 옷감이 생겨도 당신과 나눠 입었지요. 오십 년 동안 살아오며 정이 더할 수 없이 쌓이고 사랑도 얽혀 정말 두터운 인연이라고 할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나날이 몸이 쇠약해지고 병이 깊어진데다,굶주림과 추위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곁방살이에 국 한 그릇조차 남에게 얻을 수 없게 되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부끄러움이 산같이 무겁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춥고 배고픈 것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사랑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 되었고,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롭던 부부간의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처럼 되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있어 짐이 되었고, 저는 당신때문에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지난날의 기쁨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요. 여러 새들이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잃은 난새가 거울을 보며 짝을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춥다고 버리고 따뜻하다고 달라붙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고 머무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우리 여기서 서로 헤어지도록하지요.”
 
조신은 그 말을 듣고 수긍하며 각기 두 아이씩 나눠서 떠나기로 할 때 낭자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세요.” 매정하게 돌아서는 낭자의 손을 꼭 잡은 조신은 헤어지는 아픔을 눈물로 밟고 있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이라고 했던가.
 
인연이란 성주괴공(成住壞空:우주는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에서만들어지고<成>, 그렇게 존재하다가<住>, 소멸되고<壞>,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空>를 반복한다는 원리)처럼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우주의 논리가 아닐까.
 
조신은 낭자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반백년 살을 부비며 살았던 정을 생각하며 이별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은 깊어 삼경이었다. 아침이 되자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희어져 인간세상에 살 생각이 없어지고 멍해졌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젠 싫어져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은 것 같았다. 세속에 물든 탐심도 얼음이 녹듯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가 아니라 일각(一刻)이 반백년(半百年)이 된 것이다. 조신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관음상을 바라보며 한없이 참회하였다. 명주 해현고개에 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보니 돌미륵이 나왔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서 가까운 절에 모셨다. 그 후 사재를 기울여 정토사를 창건하고 부지런히 선행을 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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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이 전기를 읽고 난 뒤 사(詞)를 지어 경계하고자 하였다. 즐거운 시간은 잠시 뿐이고 마음은 어느새 시들어 근심이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했네. 기장밥이 익기를 다시 기다릴 것도 없이 괴로운 일생이 한바탕 꿈인 것을 깨달았네.몸을 잘 닦으려면 뜻을 먼저 성실하게 해야지 홀아비는 미녀를 꿈꾸고 도적은 창고를 꿈꾸네.
 
어찌하면 가을밤 맑은 꿈속에서 때때로 눈을 감고 청량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랴. 우주나이를 과학자들은 137억년이라고 한다. 인간의 셈본으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백년을 산다고 한들 지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요. 눈 깜빡할 사이인 것이다. 이 가을 떠나가는 낙엽을 괴로워하지 말고, 새순이 파릇해지는 봄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영원히오지 않을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냥 즐길 일이다.
 
 
[2013년11월19일 제46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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