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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람 차향기

개 밥그릇 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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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인가 김해도자기 축제 현장에서 평소 순박하게 도자기를 빚는 어느 순박한 한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도예가들로 솔도예란 상호를 내걸고 있었다.
 
남편인 최기영 선생은 물레질을 하다가 실수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잃었다고 한다. 에밀레종처럼 엄지손가락이 그가 만든 도자기 속에 녹아든 것이다.
 
최선생이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빚어내 초벌구이를 마치면, 아내인 엄경희 선생은 그 도자기 위에다 예쁜 자연 속의 문양들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는다. 그런다음섭씨 1300도 근방의 전기가마에서 구워내면 부부의 미묘한 감성이 조화된 그릇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유독 그들이 만든 도자기들은 분명히 색다른 무언가를 항상 느끼게 한다. 잘 깨어지지않고 청갈한 까닭에 집에서 자주사용하는 솔도예의 도자기 품새들이 그네들을 닮아 마냥 순박하고, 사용할수록 정감이 깊어진다.
 
사용할 때마다 그네들의 청아하고티없는 미소가 떠 오르고, 가난한 삶의 자취가 향기로 피어오르기 때문이리라.
 
어느날 생활에 필요한 그릇도 살 겸 아내랑 그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 있는 그들의 집에 들렀다. 반갑게 맞아주는 부부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는 격식없이최선생이 우려내는 차를 마시고있었다. 다완이 될만한 그릇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는 데, 엄선생이 눈치를 채고는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그릇 하나를 들고는 ‘이그릇이 좋을 것입니다’라며 내게 내민다.
 
불행하게도 그 그릇은 온통 오물 투성이었다. 나의 뜸떨한 표정을 읽은 엄선생은 ‘아! 이거 우리 작은 딸애가 실수로 개 밥그릇으로 써 버렸던 것이지만, 갖고가셔서 깨끗이 씻고, 소독해서 쓰신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 그릇을 손에 들고 살펴보니 다완으로 써도 좋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오물이 묻어 있고, 개밥그릇으로 써온 것이라니 몹시 찝질해서 갖고 갈까말까 차를 마시는 내내 고민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 그릇을 가져가서 다완으로야 쓸 수 있겠는가?아니지, 몹쓸 물건이라면 아예 내게 권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그네들이 정성스레 만들고 구워 낸 것인데……’ 집으로 갖고 와서 엄선생이 충고해 준대로 세번씩이나 펄펄 끓여 가며, 깊숙히 배여 있을 법한 오물들을 죄다 뽑아내었다. 아니나다를까 정말 깔끔한 다완으로 변했고 눅눅하고 습한 마음도 사라졌다. 가끔 시간이 나서 차를 마실때면 다른 다완보다 그 다완에 먼저 손이 간다.
 
천하던 개밥그릇이,쓰면 쓸수록 맛을 더하고, 삶의 멋마저 풍기는 명품 다완으로 변신한것이다. 기분이 그렇지 내 생각이야 평소 갖고싶어했던 이도다완(井戶茶碗)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그들 아니 그들보다 앞서 혼을 살라 넣고 다완을 빚어온 가난한 도예공들의 한숨과 얼을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렇다. 덕망높은 옛 선비들은 수수한 찻잎과 물그릇 하나만 있어도 다도를 알고, 인생의 깊은 맛을 토해내었다. 비록,공짜로 얻은 개밥그릇 다완일지언정 그속에 외롭게 지친 내 삶의 시름들을 우려내고, 차가운 가슴 허무는 잔잔한 향기를 뿜어내기에 족하지 아니할까?
 
[2010년 8월 31일 제1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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