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에 곱게 자란 접시꽃을 보자니 젊은 시절의 그 느낌이 아니다. 시인 도종환이 자신의 아내를 빗대어 지은 시, ‘접시꽃 당신’을 처음 접했을 때 “하고 많은 꽃들 중에 왜 접시꽃일까” 싶었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새초롬하니 아리따운 게 영락없이 우아한 여인의 자태그대로다.
새삼 시집이나 하나 살까싶어 들렀던 서점에서 막상 내 눈길을 끈 것은 직업병인지 역시 차와 관련된 서적들이다.
차의 모든 것을 담은 세계 최고(最古)의 차전문서, ‘다경’의 내용에 새롭게 주해를 단 ‘다경주해’ (육우 류건집 주해 저/류건집 역/이른아침/5만원)를 그곳에서 만났다.
보다 자세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새롭게 ‘다경’을 조명해놓은 서적을 만나고 보니접시꽃보다 더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다경’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인, 육우(陸羽)가 평생 차와 함께하며 차산지를 두루 답사하고 관련 이야기들을 모은 후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끝에 집필한 책이다.
‘다경’을 통해 약용으로만 음용되던 차를 기호음료로 바꾸는 전기를 마련했고, 차의 정신적면을 특히 강조하여 차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바로 육우이니 세계의 많은 차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것은 마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도 차성(茶聖)또는 차신(茶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육우의‘다경’은 후대에 나온 수많은 차 관련 기록이나 서적들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처럼 차도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다학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다경’은 차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서적이다. ‘다경’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정신을 이해하는 일은 일종의 통과 의례와도 같기 때문이다.
다경주해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해설서가 이미 여럿 나와 있지만, 주해도 제각각이고 이해도 어려워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건집의 ‘다경주해’는 그동안 용어의 정의가 미진하여 혼란스럽거나, 여러 분분한 해석으로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던 부분들을 통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중·일의 여러 해설서들을 조사하고 비교해 놓은 부분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동시에, 애매한 부분을 소상히 밝히는 데 온 힘을 쏟아 얻어낸 결론을 모아 펴냈다는점에서 류건집의 ‘다경 주해’는 특별하게 와닿는다.
여기에 ‘다경’에 등장하는 차 관련 용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해설했을 뿐만 아니라 의견이 분분한 부분을 특히 중점적으로 파고들어 저자 나름대의 결론을 도출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많은 해설서를 읽고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차인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다경주해’를 펼쳐든 이 순간 그 어떤 차향보다 깊고도 그윽함이 넘친다. 젊은 시절의 접시꽃이 나이들어 새삼 새롭게 보였던 것처럼 예전의 육우 ‘다경’이 오늘 새롭다.
[2010년 6월 30일 제9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