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5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코리아 클럽

 
 

 가을 볕 한적한 아스팔트길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같은 ‘붉은 악마’들을 보면 젊은 에너지가 내게 전해지는 듯 힘이 난다.

 축구가 이리 가까이 다가올 줄이야, 나는 육십 대 초반의 한국 여성이며 평소 스포츠채널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채널이었으니.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전이 벌어졌을 때 나는 브라질리아의 한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었다.

 거리는 텅 비었고 모든 여자 미용사들이 티브이를 보며 일 할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로부터 30여년 후 내게도 축구에 대한 풍월이 늘게 되었는데 이는 잠시 한국 월드컵 유치위에서 일을 한 남편에게 기인한다. 그의 말을 잠깐 빌면, ‘공은 둥글어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장기적인 축구실력은 축구 팬의 수와 잔디 구장의 수가 결정한다’는 것. 포르투갈, 브라질에선 클럽제도가 발달해서 클럽마다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벤피카 풋볼클럽(FC), 스포팅FC, 산토스 FC, 플라밍고FC, 보타포고FC 등’ 모든 클럽은 전용구장이 있고 전용구장에서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가 많다. 거기엔 유니폼, 축구공, 인기 선수를 이용한 온갖 기념품이 있다.
 
 이번에 손자 축구유니폼을 하나 사려고 이마트에 갔더니 맨 붉은악마 티셔츠만 있고 좋아하는 구단이나 선수들의 유니폼은 없었다. 이 땅에서 요즈음 전 국민이 축구광이 되는 이유는 축구를 좋아한다기보다 나라 사랑 때문일 듯하다. 우리 프로 축구는 저 쪽의 클럽 축구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저쪽의 축구는 월드컵 시즌이 아닌 평소에도 관객 수가 평균 수 만 명이다. 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TV 중계도 절제할 정도다. 실제 운동장에 가서 보는 재미와 중계로 보는 재미는 다르다니까. 월드컵이 끝나면 한 동안 썰렁해 지는 우리의 축구와 많은 차이가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무엇보다 우리의 경우 전용 구장도 없고, 팬 서비스 할 공간이 없어 클럽의 고정 팬을 확보하는 수단이 부족하다. 붉은 악마는 오붓한 나만의 풋볼클럽이 아니라 거대한 코리아 클럽의 팬일 뿐이다. 그래서 코리아 경기가 끝나면 휴면에 들어간다. 또 하나 아무도 거론하지 않고 있는 점이 있다. 우리 축구는 많은 경우에 종합운동장을 축구장으로 활용한다. 육상 트랙 때문에 정작 축구 경기는 시야가 멀어 재미가 반감되며 그러니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 안 생기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월드컵처럼 사람들을 단시간 내에 결집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심신 교육에도 큰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축구에 할애할 시간이 있는가? 고대부터 추수가 끝나면 모여서 남녀 부둥켜안고 춤추는 게 자연스럽다. 서양엔 남녀 사교춤이 있는데 여긴 자연스런 카니발리즘이 억제되어 있다.
 
 억눌린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가 부둥켜안고 춤추고 소리 지르는 계기가 되니 월드컵의 사회적인 공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과외공부 하느라 클럽에 아 다닐 여유도 없을 테니까 유명선수 유니폼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축구단 유니폼을 살수가 있을 때 우리 축구는 저변이 넓어지고 진정한 세계 수준의 축구를 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언론과 방송이 대~ 한~ 민~국 일색으로 너무 추켜세우고 균형 있는 보도를 안 해서 속이 상한다. 자칫 우리 밖의 세계엔 눈을 감아버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아르헨티나가 우리와 대등한 수준인 줄 착각했었다.

 축구는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다고 끝난 게 아니다. 한 번 4강에 진입했다고 영원한 4강은 더구나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진정한 축구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저변을 넓히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한 덩어리가 되었지만 그 이후엔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축구를 일과성 스트레스 해소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이 좋은 기회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싶다.
 
[2010년 6월 30일 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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