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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조용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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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메일을 받았다. 어느 독일인이 쓴 IS 테러에 대한 글이다. 작금의 IS 테러에 대해 더 늦기 전에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조용한 이슬람 다수가 나서서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채찍의 말이었다.
 
IS 광란의 테러 앞에 가만히 있는 다수의 점잖은 이슬람을 과거 나치 정권 앞에서 입을 닫고 있던 조용한 다수에 빗대어 탓하는 글이었다. 나치 앞에서 조용하고 점잖은 다수들이 할 말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우수한 독일인이라는 나치구호아래 우쭐했을 수도 있는 동안 어느 틈에 나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다.
 
이런 조용한 다수가 역사를 그르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희생을 낳는다는 것이다엊저녁 쾌적하고 빠른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느낀 점. 지하철은 환했고 따뜻하며 경로석은 비어 두었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그리 우악스럽게 자리 갖고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듯 했다.
 
나도 웬만하면 공짜로 탄 점을 감안, 서서 갈 궁리를 하지 자리 찾아 분주하게 눈을 굴리는 것을 마다하게 되었다. 삶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이 유사 이래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머리띠에 복면을 하고 망치를 들고 경찰과 버스를 내리치는지! 완전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아닌가!
 
남북한 대치상태인 특수상황 국의 민주주의라는 걸 무시한 채 잘 사는 나라의 초창기 원론적인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정권전복 목적으로 투쟁 일변도로 나가는 모양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정권에 불만이 있으면 평화롭게 민심을 반영하면 될 일이 아닌가! 불행하게도 여기 나의 나라 대한민국에도 광란의 긴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받은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지금까지 조용한 다수에 속해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정교과서 반대의 기치를 들고 반대자들이 거리에 나서도, 광란이 질주해도 점잖게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은 후세에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거나 거론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점잖은 우리 다수들이 실은 아이들의 교과서도 진작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어야하지 않았을까.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어느 학자에게 국정교과서를 자세히 읽어봤느냐는 질문에는 얼버무린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 하면서.
 
무조건 획일적인 것은 반대란다. 무조건 권력이 휘두르는 조치에는 반대란다. 속속들이 현재의 교과서가 시대착오적인 역사관을 반영한 것도 모른 채 약간 다른 이야기일지 몰라도 맥락은 비슷한 이야긴데, 한국고등학교에 세계사 과목이 없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누가 왜 그랬을까?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들의 밥그릇 싸움에 세계사 과목이 희생되었다? 제 밥 그릇 위주로 사고를 하다 보니 큰 틀에서 교육은 퇴보를 한 셈이다. 교육은 99 퍼센트는 학생을 위한 목적을 가져야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언제부터인지 학생을 위한 목적은 겨우 30퍼센트 될까? 나머지는 선생과 학부모의 몫이 되어 버렸다.
 
이런 멍청한 선택이 어디 있나? 이런 선택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이제 사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나는 역사를 전공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은 진실을 배우고, 세계사를 배울 동안 한국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면 장차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문명 천지에 눈뜨고 멸망의 길, 쇄국의 길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그동안 조용한 다수들은 게으르고 너무 안이한 생활을 했다. 그들은 등산을 했다. 동창회를 했다. 친목회를 하고 먹고 마셨다. 아이들이 어떤 책으로 뭘 배우는지 관심이 없었다.
 
교육부와 학교가 다 알아서 해줄 줄 알았다. 이제는 너무 잘 살아서 이념대결은 끝났으니 아무렇게 배워도 대세에는 지장 없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옆집 아이의 교과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온갖 분야의 사이트에도 부지런히 들어가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진정으로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는 다수는 가슴을 열고 입을 열어야한다. 신문이나 방송 언론에 조용한 보통 다수들을 등장시켜 말을 해야 한다. 나치가 치닫도록 가만히 있으면서 점잖음을 고수했던 다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과오의 역사, 쇄국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5년 12월 24일 제7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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