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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벤'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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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과 극장엘 갔다. 요즈음 극장은 외국의 극장들과 비슷해서 한 건물에 영사실이 여러 개 모여 있다. 입맛대로 골라 들어가니 편리하고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극장에는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대기실이 왜 그렇게 시끄러운지. 대기실 높은 벽면에 설치해 놓은 우악스러운 선전 화면이 주범이다. 돈 버는 목적아래 소비자의 눈과 귀는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를 죽이고 화면만 내보내면 안 되는가 우리는 고요한 분위기를 누릴 자격이 없는가 우리는 소리 나는 광고를 즐기는가 아님 한국인들은 이미 소음에 중독되어 웬만한 소음에는 큰 반응이 없나 목소릴 높이며 대화하는데 익숙해졌고 그래서 소리에 관한한 그토록 관대한가
컴컴한 작은 영화실로 들어가 자릴 잡고 또 쏟아지는 선전이 한 참 지난 후에야 본 영화 ‘인턴’이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드 니로가 공원에서 태극견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가 거리에서 시니어인턴 구인광고를 보고 챙기는 모습을 본다. 은퇴 후에 식물도 길러보고 여행도 많이 해봤지만 역시 사람은 매일 어디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쭈뼛거릴 것도 없이 젊은이들 회사에 가 인터뷰를 하고 채용된다.
 
일과 사회에 존경심을 표하는 우리의 홀아비 주인공 벤은 누가뭐라 해도 늘 단정한 정장차림이다. 그는 인생과 자연과 일을 사랑하는 중심 있는 남자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그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기만 해도 푸근한 어른 역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세탁소 심부름, 커피 심부름, 청소, 운전,출장, 보스의 딸 학부모 노릇을 기꺼이 웃으며 한다. 그런 홀아비인턴에게 회사 구내 마사지사인 여자친구도 생긴다.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자보스 앤 해서웨이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드디어 아버지나이의 인턴 벤에게서 지혜와 사랑을 배운다. 지긋한 나이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넉넉함, 느긋함, 지혜가 벤에게 있다. 젊은 여자 보스 앤의 일과 가정파탄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피날레다.
 
오늘 날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여성의문제와 고령화문제는 세계적인 문제다. 이 영화가 딱 우리나이 영화임을 실감했고 해서 남편에게도 보라고 했다. 그가 어느 날 집에 들어서며 ‘여보, 아주 재미있는 영화야 그런데 영화 속과 우리 환경이 너무 달라. 젊은이들은 너무 어른들을 무시하고 있고 또 어른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너무 몰라’
 
그러나 이건 환경을 탓할 문제가 아니고 어른들이 좀 더 용감해져야 한다. 인터넷에서 미국의 100세 여자가 세탁소에서 지금도 일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것저것 눈치 안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그녀의 배짱이 부럽다. 실속 없이 명분 속에서 평생 남의 눈을 의식해야만 하는 우리네 어른들.
 
우리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졌다고 개탄을 하지만 어른노릇이란 결국 자신이 스스로 즐기는 일을 눈치 안 보고 하는 것이리라. 젊은이들은 그런 단정한 어른의 노련함에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우린 그 후 유행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벤에게 물어봐’
 
 
[2015년 11월 20일 제70호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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