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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스위스 플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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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파는 집은 들판으로 나가는 길 끄트머리에 있다. 오래된 초등학교를 지나고 오래된 교회를 지나 커다란 시계달린 집 너머 아름드리 호두나무들을 지나면 닭그림과 셀프self 라는 안내가 보인다.
 
로잔에서 15km 떨어진 인구 기백명의 농촌인 이곳은 고흐 그림속의 누런 벌판과 노란 해바라기 밭 또 초록빛 옥수수밭들이 펼쳐지는 한가운데 있다. 고흐 그림과 다르다면 엎드려 일하는 사람 하나 안보이고 커다랗고 기능성이 다양한 트랙터들이 가끔 보인다는 것이다.
 
마을엔 식료품가게 겸 카페 하나, 고급식당 1개, 미장원 1개, 동회, 우체국이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1시간에 한 번 근처 기차역까지 연결되는 버스가 온다. 버스는 우체국에서 운영한다. 소방서가 있어 국경일에 불꽃놀이라도 펼쳐지는 날에는 소방관들이 불자동차와 함께 대기하고 있다.
 
1867년에 지은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를 옆집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졸업했고 지금은 그 아들의 딸이 다니니 3대가 동창인 셈이다. 학교이름은 아무데도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세운 연대만 1867 이라고 건물 중앙 위에 새겨져있다. 햇빛에 조잘대는 나지막한 학교 돌담 곁으로 키 큰 트랙터를 운전하던 농부가 손을 흔든다. 익숙한 농가 냄새 속에 엊그제 태어난 얼룩송아지들이 끔뻑끔뻑 행인을 반긴다.
 
마을 저쪽 끝에 잔디축구장이 놀고 있다. 정식 월드컵 축구장이라해도 좋을 정도로규격이 표준인 듯 보인다. 인구도 몇 안 되는 농촌마을에 정식규격 잔디 축구장이 그것도 거의 마을마다 있다. 그 축구장 만들 때 옆집 농부 앙드레가 거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고 할아버지가 닦아 놓은 잔디축구장에서 논다. 빈 축구장을 볼 때 마다 나는 우리나라 아이들 생각이 간절하고 끔찍이도 관리가 잘되고 있음에 감탄을 한다.
 
축구장에는 샤워실 외에 마을 도서실도 있다. 손자와 나는 가끔 거기 가서 축구를 했다. 야구도 했다. 덜렁 누워도 보았다. 농부 외에도 마을엔 도시로 출퇴근하는 젊은이도 있고 재택근무자도 있고 50%, 80%만 일하는 아기 엄마들도 있고 주부도 있고 은퇴자들도 있다. 도시로 등교하는 내손자도 있는 이곳에 나는 매년 방문하는 것이다. 따가운 햇볕 속으로 감히 쳐들어간다. 여름방학을 알리는 가 150년된 초등학교 교정이 사뭇 들떠있다. ‘셀프’ 간판 따라 계란 파는 집 빈 차고에 들어서니 서늘하다.
 
햇빛 속에 놓아 키운 닭의 알은 하얗고 크고 신선하고 맛이 있다. 귀여운 돈통이 있고 벽에는 가격을 붙여 놓았다. 계란 박스 모아 놓은 걸 챙겨 들고 가 12개를 사고 옆에 놓인 수첩에 ‘계란 12개 5프랑 60전’ 이라고 써 놓고 동전을 느릿느릿 세어 돈 통에 넣는다. 아차, 자세히 읽어보니 12개는 5프랑 50전이란다. 이미 동전을 넣어버렸으니 할 수 없다. 10전을 더 넣은 셈이다. 거스름돈을 내 줄 사람이 없으니 그 집 갈 때는 동전을 가져가야한다. 이나라 동전은 마디다. 6천 원짜리, 3천 원짜리 동전만 지갑에 있어도 든든하다.
 
노부부가 차를 몰고 와 세우고 들어서며 ‘봉주르’ 나도 ‘봉주르’. 6개짜리 계란통을 들고 와 계란6알을 세어 넣고 동전 넣고 수첩에 기록한 후 나간다. ‘오르브아’ 나도 ‘오르브아’ 별말이 필요 없고 반듯하고 조용한 이런 분위기가 스위스 분위기다.
 
어른 두 사람이 차까지 몰고 와 사가면서 겨우 6알을 사다니 한국서는 30개들이 계란 한판을 망설임 없이 사들여놓던 나는 쫀쫀한 스위스 인들에 놀라고 만다. 실은 물가가 비싸서 그런 것 같다. 빵도 비싸고 우유도 비싸고 하니 조금씩 사고 알뜰하게 먹어치우니 쓰레기도 별로 많지 않다. 쓰레기봉투 값도 비싸다. 벽에 붙은 냉장고도 우리네 냉장고 크기의 반이나 될까.로즐린네 냉장고는 그 큰 농갓집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김치냉장고 까지우린 냉장고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사치를 누리는 듯하다. 그러니 많이 사들이고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모양이다. 이 나라에서는 계란 12개가 6천 원 이상인 셈이니 내 손도 떨리는 것이다. 하나있는 동네 가게에서 사자면 무려 7천 원 이상이다. 맙소사 우리 집에서는 하루에 계란 5개씩이나 먹어치운다. 한국서 온 주부에게 이것 말고도 놀랄일이 더 있다. 돌아가신 또 다른 앙드레 할아버지의 식사 후 접시는 늘 말끔했다. 밥알 한 톨도 소스자락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름하여 ‘스위스 플레이트’ 즉 스위스식 접시라고 부른다. 우리로 말하자면 발우공양 스님의 식사 후의 빈 그릇일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에 사는 나의 손자는 물컵 우유컵 여기저기 이리저리 남긴 흔적이 많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시리아 난민 아이들 이야기와 6.25 한국전쟁 이야기를 해 준다. 손자에게 인기를 얻을 리 없다.
 
[2015724일 제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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