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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더 치 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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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십 대 한국여성이다. 대학교 동창들과 가끔 만나면 점심 후 미술관 한 바퀴 돌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이 때 알뜰하고 분명한 한 친구의 주장으로 더치페이를 한다. 나는 이 점이 자랑스럽다.
 
이번엔 네가 냈으니 다음엔 누구 차례가 되고 또 누구 차례고 머리를 굴리려면 복잡하다. 다음번에 빚을 갚으려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 현재, 오늘, 지금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현재 계산을 맑게 끝내고 싶다.
 
십여년 전 여러 나라 대사 부인들 모임을 어느 불가리아식당에서 했을 때다. 식당 측에서 20명 정도되는 부인들에게 일일이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었다. 메뉴가 모두 다르고 마신 것도 다 다르니 한테이블에 20장 정도의 청구서인 셈이다. 부인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먹은 것은 자기가 지불했다. 한국 같으면 한 장의 청구서가 나올것이며 한 사람이 지불했을 것이다. 어색하게 느낀 사람은 한국여자인 나뿐이었나 보다.
 
나의 다음 행선지였던 케냐를 떠나 한국 오는 길에 소피아에 들러서 소피아에서 몇 년 만에 일본여성, 불가리아 여성과 셋이 근사한 식당에서 회포를 푼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은 아주 자연스레 각자 1/3씩을 내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도 1/3을 냈다. 외국서 외국인들과는 더치페이가 자연스러운데 한국 사람끼리는 그게 잘 안 된다.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계산하고 나누고 하는 모양새가 영 양반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거다.
 
한 턱 내는 문화가 과연 푸짐하고 넉넉하기만 할까? 실은 얻어먹은 이도 편치 않을 거다. 헤아리고 헤아려주길 기대하니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김영란법이 나오고 법인카드사용이 유리알같이 밝혀지는 이 시대에 한 턱 내는 문화는 이제 고칠 때가 된 듯하다.
 
더치페이는 네덜란드인들의 지불 스타일을 말한다. 한 때 친하게 지냈던 더치 여인 요케는 더치페이라는 이름처럼 그리 인색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둘이 식당에 갔을 때 더치페이를 했지만 그 후 내가 암스테르담에 들렸을 때 고흐미술관 입장료는 각각 냈지만 자기 돈으로 내 전차표를 사주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시폴 공항에서 전철 표를 살 때 기계로 사는 것 보다 창구에 줄을 서서 살때는 돈이 더 붙는다. 노동 비를 붙이는 것이다. 이때 더치란 참으로 깍쟁이구나 하고 느꼈던 일이있다. 이에 비해 우리네 인심은 푸근하다.
 
그런데 우리식은 좋게 말하면 푸근하지만 조금 틀어지면 원수가 되어 물고 뜯는 일이 종종 있다. 인간관계에서 부담 주지 않는 서늘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깍쟁이 같이 느껴져도 분명한 ‘각자 부담’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도 싶다. 우리나라 어느 재즈클럽이 외국대사들 초청파티를 열었을 때 점잖은 대사들이 자기 먹은 것을 각자 부담을 했다 해서 신문에 회자되고 있다. 情도 문화도 좋지만 선진국이 되자면 선진국의 실용성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2015525일 제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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