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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로즈린

 
지난 여름 로즈린을 다시 만났다. 아름드리 그 집 마당 체리나무처럼 듬직한 로즈린은 농부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다섯 손주의 할머니다.
 
사는 집은 여느 농가이며 자식들과 한 마을에 살고 있다. 수영복의 그녀가 햇빛 아래서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보며 스위스식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소들이 풀을 뜯는 전형적 스위스 농촌 마을에서 소도 아이도 노인도 자연의 한 부분인 것을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남편과 막내아들 아드리안은 소젖을 짜고 트랙터를 몰고 다니며 드넓은 농장을 가꾸고 로즈린은 장미와 호박 산딸기등 텃밭을 가꾼다. 스위스 농부의 삶을 관찰해 보았다. 농장에는 우리 농촌에서처럼 엎드려 풀 뽑는 농부들이 없다. 그래도 어느새 땅은 갈아져서 검은 흙들이 숨을 쉬고 있고, 어느 새 밀, 해바라기와 옥수수씨가 뿌려졌으며 어느 새 누런 이삭들이 가득한가 하면 감자꽃이 하얗다.
 
곡식을 걷어낸 자리에 일정한 크기로 둘둘 말린 소먹이 풀뭉치가 창고 행을 기다리고 있다. 소들의 양식인 것이다. 소에서 비롯되는 우유와 치즈 고기 등 낙농업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소똥은 과일과 채소 찌꺼기들과 함께 거름으로 모아 놓았다. 소와땅과 농부와 트랙터와 거름 모으는 장소는 매일 만나는 스위스시골의 풍경이다.
 
로즈린은 스위스 북쪽 독일어 지역 태생인데 남쪽출신의 남편 앙드레를 만나 남쪽인 로잔 근교 시골에 살고 있다. 놀랍게도 남편, 아들, 손녀 삼대가 이 마을에 하나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150년 전에 세워진 그 마을 초등학교 마당에서 내 손자는 축구를 한다.
 
마을은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시골마을에 유명한 식당이 있어 외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몸집이 크고 스키를 즐기는 다섯 명의 손자를 둔 농촌의 할머니가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꺼낸다. 올림픽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커피 한잔을 나누며 내가 건넨 이야기는 푸르른 자연 속에서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농부의 삶을 사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그녀는 맞장구를 친다. 농촌이라지만 18km 달리면 도시에 닿는 농촌은 도시의 삶에 비해 오히려 럭셔리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이 될 듯하다.
 
벌써 귀농 물결이 조심스레 일고 있는걸 봐서도 그렇다. 도시의 매연이나 소음이 없고 시골에도 인프라가 잘 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웬만하면 시골로 갈 것이다. 내 동창생의 딸 부부는 신혼인데 시골로 내려갔다. 귀농을 위해 부디 국가가 병원 도로 학교 쇼핑 등 든든한 기본 인프라를 제공하길 빈다.
 
아침이면 새 소리에 일어나 텃밭을 돌보고 푸른 잔디에서 그림같이 뛰노는 손주들과 산딸기와 체리를 따먹으며 햇살아래 어느 누가 행복하지 않겠나. 스위스에는 유명한 의사들이 시골에 살고 있어 도시 사람들이 시골까지 진찰하러 간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14년  9월 23일 제5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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