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5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행복감 충만한 사랑의 선물

 
 
음악회 이야기
 
저녁 음악회에 간다는 것이 아직은 우리에게 일종의 사치일까만, 어느 날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일을 하는 바쁜 딸아이가 뜬금없이 나하고 둘이서만 음악회에 가잔다. 썩 내키지 않는다.

젊은 부부가 간다면 모르겠는데 그 경우엔 물론 아이 보는 일은 내차지가 될 테지만, 아무래도 그편이 자연스러운데. 가니 안가니 모녀간에 왈가왈부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졌다.

나이든 엄마는 복닥거리는 딸이 편히 쉬는 걸 더 바라고 젊은 딸은 엄마에게 깜짝 선물 주는 것을 즐기는듯하다. 작년 말의 일이다. 알록달록 츄리 아래 흰 봉투, 그 안에 따끈따끈한 음악회 표 두 장이 놓여있다. 저랑 나랑. 에구구-, 찍어 바르고 따라나설 수밖에.

 GPS가 있으니 망정이지 안개와 빗속을 두 시간 이상 달렸고 표지판 언어도 낯선 취리히에 들어서서는 컨서트 홀을 찾느라 헤매고,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허둥지둥 콘서트 장에 찾아 들어가니 5분 늦었다고 노인 안내원이 쯧쯧 한다.
 그 애는 콘서트라는 델 가 본지가 아득하다는 이야길 했다. 그렇겠지. 육아와 가사와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달려 밤비 속에 어렵사리 찾아간 취리히 Tonhalle grosser Saal. 문간을 지키던 노인에게 한마디 듣고 2층으로 올라가니 고맙게도 나이 지긋한 여자 안내원 둘이 의논을 하더니 살짝 문을 열어준다.

 첼로 협주곡이 방금 시작된 듯하다. 살그머니 맨 뒷자리에 자릴 잡았다. ‘역시 오길 잘했어!’‘ 정말이야?’ 그동안 아이와 장난감들 속에서 시끌벅적 지내다가 갑자기 우아한 화음과 함께하니 이상하다. 아니 행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딸의 깜짝 선물이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선물이란 이런 것이구나. 인간은 가끔은 고상해질 필요가 있구나.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제 자릴 찾아 갔는데 맨앞에서 세 번째 줄이라 목이 아프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맨 앞자리에, 할머니들이 우리 좌우에 있는데 이 표가 한 장에 십만 원 정도라니...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원내고 좋은 자리에서 구경하고 비빔밥에 커피까지 마신 걸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관객이 스스로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것이 그리 먼 이야기일까? 한국에서 연주회장 가는 길이 쉬워지는 날, 예술의 전당도 장충동 국립극장도 부산 문화회관도 전철역에서 백화점이 바로 이어지듯 친근하게 이어지게 되는 날, 한국의 실버들도 저녁 음악회 나들이를 즐기게 되지 않을까? 사실 실버들이야말로 음악회에 갈 여유 있는 층이다. 아는 이가 초대해야만 마지못해 가는 음악회에 말고 스스로 즐기러 가는 음악회가 그리 요원한 일일까? 화려한 샹들리에와 천장 장식을 보니 한창때를 짐작할 수 있다.

 수가 많지 않은 수수한 오케스트라 단원들, 나풀나풀 움직이는 날씬한 지휘자 Sebastian Tewinkel, 그리고 점잖은 관객들, 한국에서의 청중들은 멋쟁이 젊은 여성층이 많은듯하나 여긴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이쪽도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모양이다.

 무대 가까이서 보니 여성 단원들은 머리 질끈 동여 매고 있는 것이 화장이나 미장원하고는 거리가 먼 듯하다. 젊은 첼로 협주자 Maximilian Hornung는 두 곡이나 앵콜 중이다.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악회인 모양이다. 브로셔(안내 책자)에는 온통 독일어로 자기들끼리만 알게 써 놓아서 모르겠다. 그러나 연주를 알아듣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니 음악처럼 다정한 언어가 또 어디 있을까싶다.

 쉬는 시간, 로비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오순도순 모여앉은 할머니들이 한 잔씩 걸치며 이야기들을 나눈다. 로비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많이 놓아 두어 노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해놓았다. 노인들은 행복한 저녁 나들이에 익숙한 모습들이다. 저녁나들이를 겸한 음악회와 튼튼한 노후의 함수관계를 알게 된 밤이다. 이튿날 새벽 0시 30분 쯤 집에 돌아오니 자욱한 밤안개 속에서 개가 짖는다.
 
 
 
/ 자유기고가
[2010년 2월 20일 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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