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9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돈 쓰는 법

 
 
오민경.jpg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그 돈을 죽을 때 가져갈 수는 없다.
 
이 사실을 터득한 빌게이츠 재단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어떤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남겨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방문한 뉴욕의 Frick 뮤지엄도 개인이 수집한 그림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Frick 뮤지엄은 맨해튼 주택가 속 일반 집처럼 생긴곳이다.
 
어느 여름 날 저녁에 얌전한 차림의 나이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바흐 연주를 감상한 후 베르미어 그림도 있는 작은 미술관을 둘러보던 그 날 저녁의 기억이 아직도 흐뭇하다. 우리나라에도 사설 박물관 셋- 간송, 호암 그리고 호림 박물관이 있다. 은퇴자들은 공짜 전철을 타고 조용한 주중에 약간의 돈을 내고 박물관에 들어가면 우리 조상들의 높은 안목과 아름다움을 만날수 있다. 은퇴자들이 시간 보내기로는 그만이다.
 
어제 찾아든 호림 박물관 역시 맨해튼의 Frick 뮤지엄처럼 주택가에 있었다. 연립주택들이 빡빡한 신림동은 호림 박물관을 이웃해서인지 격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분한 느낌이다. 쓰레기 안보이고 큰소리도 안 들리는 골목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개성상인 출신인 호림 윤장섭씨는 1922년생이니까 93세다. 지금도 혜화동에서 전철을 타고 자신이 세운 박물관에 출근한다. ‘혼자만 보면 무슨 재미인가’ 철학이 그를 대변하듯 그가 자신의 수집품을 보러 박물관에 온 사람들을 사랑하는것이 눈에 보인다. 우리 역사상 우리의 보물들을 우리가 지킬 여력이 없었다. 수집가는 도난당한 보물들을 이리저리 사들였을 것이다. 일본이 가져간 보물을 재일교포가 사들이고 이것을 다시 사서 국내로 가져오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 많은 설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다 혼자만 들여다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물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사실 백자 항아리 하나를 개인 집 아파트 거실에 놓고 도난당할세라 전전긍긍하면서 혼자 보는 것 보다 박물관에서 우아한 조명아래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도록 하면 그것도 애국이고 인류애적인 행동일 것이다. 그 귀중한 물건들도 개인집에서 보다는 지진 대비 건축된 전문적인관리가 잘 되는 박물관에 맡기면 보존도 잘 되는 것은 물론이다.
 
복잡할수록 도시는 더 미술관화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사는 동안에는 기왕이면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면서 지내고 싶은 것이다. 그만큼 미와 인간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요즘엔 많은 지자체들이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개개 부자들의 넓은 안목과 기여가 필요할 것이다.
 
호림 박물관은 토기, 도자기, 회화, 전적(典籍)류, 금속공예품 등 1만 여점의 유물 중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들이 많을뿐만 아니라 소장품의 다양성과 질적인 면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윤장섭 선생의 기업 성보산업은 귀에익은 대기업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2014년 2월 21일 제49호 13면]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