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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점잖은 고독

 
 
오민경.jpg흰 산자락에 겨울 햇빛 쏟아지는 아침풍경이라면 제랄드 무어의 피아노 반주와 피셔 디스카우의 겨울 나그네가 제격이다.
 
미세먼지가 심술을 부린다 해도 이 아침은 환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독일어로 부르는 겨울 나그네에는 뭔지 쓸쓸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남성적인 고독함이 있다.
차가운 방에서 작곡을 하는 고독한 슈베르트를 그려보고 피셔 디스카우와 제랄드 무어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공연을 내가 사랑하는 유튜브로 본다.
 
이보다 더 고독할 수 없을 만큼 슈베르트는 고독을 잘 표현했다. 그의 삶이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한 참 지난 이 시대에도 유튜브에서 느끼는 슈베르트의 고독은 이성적이며 점잖게 다가온다. 아니 아름답다. -고독이 아름답다- 앞으로 몇 번이나 될지 모르지만 나는 겨울마다 그의 겨울 나그네를 들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처럼 가슴을 뛰게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시대에 상관없이.
연말이다. 모두가 떠밀려 다니는 인상을 주는 대도시의 연말엔 겨울나그네 대신 겨울 동아리가 있다. 동아리에 속하지 않으면 외롭고 그 외로움은 따돌림이나 쳐짐으로 느껴진다. 노인은 혼자 산책하기를 꺼려한다. 누굴 거느리거나 보살핌을 받는걸로 보이는 것이 미덕이었던 과거를 잊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도 인터넷에 올라 온 우스개 소리가 씁쓸하다. 시골 부모님을 성공한 자식이 서울 강남에 모셨는데 결국은 무관심에 가출을 했다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아들과 며느리를 비난한다.
 
한편으로는 왜 노인을 한 몸처럼 여기고 아기처럼 보살펴야 하나?, 왜 우리나라 노인들은 고독하면 안 되는가? 생각이 든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고독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정도다. 늘 비비대고 한 몸으로 살아온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는 이즈음 우리 노인에게도 고독을 즐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불쌍해 보이지 않는 고독을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고독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줘야 한다. 혼자 산책하는 노인에게 미소를 보내고 싶다. 노인들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감상하는 겨울이 되길 바란다.

[2013년 12월 23일 제4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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