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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알 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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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반한 한국인은 나뿐이 아니다. 지금은 故人이 된 소설가 이병주씨를 삼십년 전 리스본에서 만났던 생각이 난다.
 
그는 리스본의 허름한 달동네 창가에 놓여있는 꽃화분과 점잖은 색채, 간판 같은 것을 보고는 포르투갈의 특유한 정서에 매력을 느껴 자주 오게 됐다고 했다. 보면 볼수록 점잖으면서도 은근한 매력을 느꼈다면서.
 
한때 살았던 포루투갈을 15년만인 밀레니엄 해,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찾았었다. 포루투갈은 약간은 들떠서 짙은 과거에다 미래를 입히고 있었다.
 
이번 여름 방문은 오로지 딸이 원해서였다. 딸은 어릴 때를 회상하여 살던 집과 사람들을만나고 싶어 했다. 리스본은 그렇게 우리 식구 모두의 고향 같은 곳이다. 리스본 시 전체가 박물관 같아서 리스본을 찾는 사람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가 회상에 잠긴다. 삼십년 전 이미 관광부가 별도로 있던 나라이니만큼 관광 마인드가 깔려있고 대충 영어가 통한다.
 
이번에 묵은 알파마 지역은 관광객이 넘실거리는 달동네 같으면서도 역사가 서려 있는 곳으로 우리의 북촌마을 같은 곳이다. 알파마는 리스본 서쪽의 바닷가에 위치하면서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어 창문 사이로 얼핏 바다 정경이 보이기도 한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오직 이곳과 제라니모스 성당만 온전히 남았다고 한다. 이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2백여 년은 넘은 건물들로서 보존의 대상이고, 수리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원형보존을 하도록 돼있다.
 
내가 머물던 집의 앞집은 몇 년째 수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같으면 그 정도의 규모는 수개월 내 완성될 것 같아 보였다. 한국계 여성 필립파원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손님이 몰려든다. 손님들은 미국, 독일, 영국 등 각 나라에서 오는데 그 중에는 수개월에서 1년씩 체재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엔 불과 스무 개 남짓하던 민박집이 지금은 천 개도 넘는다니 알파마의 관광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볼 것, 느낄 것, 들을 것 특히 情이 많은 곳이다. 포루투갈의 민속음악인 파두의 주제가 대부분 사우다드인데 딱히 번역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恨으로 번역하면 그럴듯한걸 보면 그 정서가 우리와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대서양으로 흘러내리는 떼조 강을 바라보는 리스본 언덕에 아줄레이로 타일로 장식된 낡은빌딩들이 어깨를 비비며 서 있다. 언덕배기 길들은 예전엔 마차 길이어서 비좁지 않으나 차가 다니기엔 좀 협소한 느낌이다. 그러나 지진을 이겨낸 꼬불꼬불 달동네에 전차가 다닌다.
 
댕댕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내 바로 곁을 스치는 전차를 예쁜 여자 운전자가 몰고 간다.골목길과 성당 사이사이로 빼곡히 차린 카페, 식당들, 그 식당에 앉아 파두를 듣고 밤을 지새우는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즐거운 표정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관광객뿐이 아니다. 원래 사는 리스본 주민들도 길가 테이블을 차지한다. 경제, 경제 해도 먹고 마시는 문화는놀라울 정도로 몸에 베여있다.
금요일 밤은 특히 마을 전체가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마을인 듯 관광객과 현지인들 모두 행복해 보인다. 이상한 것은 밤거리에 이쯤되면 당연히 있음직한 목청 높여 싸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딸과 손자가 한 밤중에 걸어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리다.
 
파두식당에 들어가 딱딱한 나무 벤치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늙은 가수 중년가수 젊은가수가 차례로 나와 목청껏 파두를 부른다. 관광객들은 좁디좁은 식당에서 유쾌한 밤을 보낸다. 마지막엔 요리사와 식당 주인, 종업원까지 나와 파두를 부른다. 늙고 젊고 뚱뚱하고 날씬한 남녀가수들은 식당 밖 벤치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식당 주인내외는 들락날락 호객을 하면서 포르토와인을 권한다.
 
알파마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루를 포르토와인처럼 사는 듯 오늘 밤 만큼은 인생이 달콤한 듯하다. 그런데 웬 낙서가 이리도 난무하는 지 낙서도 예술처럼 공들여 한 것들도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낙서가 많다. 그래피티 예술도 어쩌다 하나 그려놓아야 예쁘지 이래서야 리스본 전체가 낙서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차역 승강장의 올려다보는 디지털 전광판에까지 낙서 때문에 기차시간 정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대서양을 향해 찬란했던 옛 영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들, 광장들, 드넓은 길들, 또 아름다운 동상들에 젊은이들이 반항하는 건가? 하긴 실업률이 20%에 육박한다니 젊은이들이 뿔 날만도 하다. 만나는 리스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제 이야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진다.
 
창은 대서양을 향하고 객은 창밖을 내다본다. 오래되어 퇴색한 지붕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바다에 정박된 대형 외국 선박들이 보인다. 잠을 청하려면 창을 닫아야한다. 창을 열고 있으면 앞집 식당서 나이든 가수들이 부르는 파두가 밤새 들려온다. 이튿날 아침은 참으로 고요해서 여기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닐까 느껴진다.
 
게으른 아침에 지난밤의 술과 노래를 털어내고 다시 떠올라주는 다정한 햇살과 함께 하루를 여는 곳에 지도를 들고 배낭을 맨 객들은 미로 같이 좁디좁은 골목길을 훑고 빨래 널린 창에 눈길을 보낸다. 옆집 노파는 조그만 창을 내다보며 민박집에 들락거리는 이방인에 호기심을 갖는다.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어느 사람들이 왔는지 그녀에게 인생은 재미있다.
 
민박 골목길 한가운데 알프레도네 식당 테이블이 하나 놓인다. 연인 둘이 식탁을 감싸듯 앉아있다. 사옹 에스테바옹 교회 층계에 또 다른 연인들이 앉아있다. 놀이터도 학원도 없는 알파마 골목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2013년 9월 27일 제4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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