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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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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뉴욕 아스토리아 지역에 다녀와 회상에 잠겼다. 거리는 걷고 싶도록 적당히 붐볐으며, 쇳소리 요란한 골동품 전철을 타기라도 하면 땅속 깊이 내려가지 않아 다행이었으며 전철은 일단 타면 시원했다.
 
시끄럽고 더럽고 찌는 뉴욕 전철 로비에서 음악가들이 연주를 했다. 그중에는 동양인들도 더러 연주를 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지린내 나는 전철역도 있었고 쓰레기는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초록빛을 존중하는 뉴욕시민들은 뉴욕의 허파라는 쎈추럴 파크에서 즐길 줄 알았다.
 
마주치는 다양한 인종들은 화가 난 표정들이 아니고 너는 너, 나는 나를 존중하는 듯 자유롭다. 아이 넷 딸린 전철 속 유태인 가족이 행복해 보이며 당근을 먹는 청년, 여행하는 한국 청년들도 있었다. 남미 얼굴들, 흑인들, 아랍, 아시아인들 또 백인들이 한 냄비 속에서미국이라는 맛있는 스프라도 끓이는 모습이다. 심심찮게 보이는 체격 좋은 다양한 인종의 남녀 경찰들도 한몫을 한다.
뉴욕 맨해튼에서 로버트 케네디 다리만 지나면 나타나는 아스토리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산다는 지역이다. 백년도 넘은 붉은 벽돌의 5층짜리 아파트 건물들이 빼꼭하다. 2008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아스토리아를 선택하여 다큐를 만들었다.
 
이지역에 사는 각 인종들을 샘플로 선택하여 DNA를 채취하고 그들의 조상을 찾아가는 작업을 했는데 결과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것이다. 우리는 한 조상 아래 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수준 높은 다큐였다.
 
아스토리아에서는 전철로 맨해튼에 쉽게 출입할 수 있어서 유난히 많은 젊은이들을 볼수 있다. 맨주먹으로 신세계에 발을 디디고 일어서는 젊은이들의 보금자리이다. 나는 전철에서 내려 젊은이들을 따라 오래된 쇠층계를 내려온다. 코앞에 ‘줄리와 줄리아’ 라는 요리 영화에 나온 생선가게에 들린다. 싸고 먹음직한 대구 머리를 사고 대구탕을 생각한다. 생선을 들고 저자거리 같은 다양하고 활기찬 거리를 걷는다.
 
그리스 카페에 나와 앉은 젊은이들이 한가롭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 걸치는 모습들이 걱정에 찌든 나라에서 온 내게는 부럽게 느껴진다. 이들보다 더 많이 가진 나는 왜 이들처럼 느긋하게 한 잔 걸칠 수 없을까? 내 생애 거의 전부를 분단국가 휴전국가에서 살아서 일까?
 
다음은 수퍼마켓, 여기도 잠깐 들린다. 그 옆은 없는 것 없는 파마시 즉, 약국이다. 길을 건너면 반가운 채소 과일 가게가 24시간 연중무휴란다. 케일을 사서 어떻게 먹느냐 물어보니 삶거나 볶아먹으라고 한다. 스위스에서 사람들이 주중 5일 저녁 6시 가게 문 닫는 시간에맞춰 종종거리며 쇼핑을 해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선과 케일과 과일을 들고 골동품 아파트에 들어선다. 역시 오래되고 묵직한 열쇠 꾸러미의열쇠로 우아하고 무거운 철문을 열고 닳고 닳은 골동품 대리석 층계를 걸어올라 드디어 지붕 밑 아파트에 들어선다. 이곳 젊은이들은 이렇게 산다.
 
옆집 에어컨소리가 밤새 요란하고 열어놓은 창밖에 수위아저씨 수다 떠는 소리가 낮잠을 깨운다. 건너편에서 정신박약아 청년이 지르는 소리에 놀랄 것도 없다. 이 동네는 그렇게 흐른다. 2013. 8. 12 뉴욕
 
[2013년 8월21일 제4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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