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5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예술을 통한 감동과 기부

서커스와 컨퍼런스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불빛도 휘황한 서커스가 마을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에 서커스단이라니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에 서커스단이라니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때는 아이 핑계대고 온 식구가 구경을 가는 법. 추억의 시골 서커스 구경이 표 한 장에 십만원 가까이라는데 어리둥절했지만 크리스마스니까 저녁6시 공연 시간에 맞추어 갔다.
 
 알고 보니 서커스는 8시에 시작하고 6시부터 칵테일, 저녁식사, 컨퍼런스까지 한단다. 아니, 애들하고 동네 서커스 구경 왔는데 웬일이래. 혹 발 시릴까 아이 포대기까지 들고 왔거늘 텐트속은 따뜻해서 코트를 벗어 맡겨야했다. 어, 로컷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온 여성도 있네.
 알고 보니 서커스는 8시에 시작하고 6시부터 칵테일, 저녁식사, 컨퍼런스까지 한단다. 아니, 애들하고 동네 서커스 구경 왔는데 웬일이래. 혹 발 시릴까 아이 포대기까지 들고 왔거늘 텐트속은 따뜻해서 코트를 벗어 맡겨야했다. 어, 로컷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온 여성도 있네.

 서커스에 컨퍼런스라니 무슨 회의를 한다는 뜻인가? 맛있는 아시아식 뷔페 후 안내된 자리에 가 앉으니 이 서커스 구경이 자선행사를 겸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Terre des Hommes’ 라는 세계아동 구호 단체가 네팔의 아동실태 영화를 두 편 보여준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Alexandre Jollien이란 스위스 작가이자 철학자가 그 단체의 자원봉사자로 네팔에 가서 영화에 출연을 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자 바로 그가 이 자리에 나와 서커스에 모인 군중에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온몸을 흔들며 애써 말을 쥐어짜는데 한참을 끈질기게 하는 걸로 보아 그가 웅변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너무 흔드는 게 애처로워 꽉 붙잡아주고 싶고 말도 대신 해주고 싶을 정도지만 손에는 염주를 돌리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그를 사회자는 붙잡아 줄 생각도 안한다. 보통사람처럼 그냥 놔두고 귀담아 듣고 질문하고 하는 것이다.

 
 이런 장애자도 대학을 나와 철학자가 되고 책도 쓰고 아동구호활동에 참여하는 풍토가 성숙하게 다가왔다. 그런 그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 관람객이라야 백 명도 안 되는 소규모지만 그는 더없이 진지했다. 내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은 이유에는 그가 불어로 했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사회자는 끈기 있게 듣고 대화하며 청중들과 묻고 답하고 한다. 그걸 컨퍼런스라고 하는 모양이다.
 
 천막속의 서커스와 컨퍼런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어울리고 있었다. 등산가들이 에베레스트 산에 갔다가 산도 산이지만 네팔 아동의 현실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현지에 남아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

 산에 대한 도전 보다 사람의 땅에 대한 도전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영양실조, 위생불량 그리고 사고 등으로 아이들이 장애가 되는 걸 막고자 행동하는 젊은이들이 장해 보였다.
 
보통의 스위스 청년들은 너무 안락한 현실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그들이 다른 나라의 불행한 어린이를 위해 행동으로 나설 때 감동을 준다.
 
 하물며 중증 장애인 알렉 산드르가 나설 때에야. 그의 컨퍼런스는 많은 장애인들 아니 보통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줄 것이다.
 
 오늘 서커스 입장료는 그대로 TdH로 간다고 한다. TdH에서는 아동성범죄, 아동성상품화, 아동군인화, 아동노동착취, 아동 폭력에 행동으로 맞선다.

 Terre des Hommes(사람의 땅)라는 단체의 이름이 쌩떽쥐베리의 책제목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사람이 사람의 땅에서 사람노릇을 한다? 서커스 공연에 이런 참한 생각이 함께 한다고 하니 서커스단들이 그냥 서커스단으로 보이질 않는다. 온 식구가 조금이나마 남을 도울 수 있는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으니 딸 덕에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이도 보채질 않는 화려한 저녁 외출이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드디어 스위스인 가족이 하는 서커스를 봤다. 그 옛날 처량한 떠돌이 서커스 단의 애틋함이란 없고 서커스를 하나의 예술로 직업으로 자부심을 갖고 임하는 느낌을 받았다. 광대의 익살이 재미있었다. 상자속 사람이 바뀌는 마술은 정말 신기했다.

 내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봤건만. 나같이 속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서커스예술이 이어지지 않을까. 아니 서커스나 마술을 하나의 예술로 여기고 끊임없이 연습을 한 결과가 아닐까.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헐레벌떡 나오니 텐트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살 반짜리 아이에게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보여준 듯 해 염려스러운데 아이는 아직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 자유기고가
[2010년 1월 13일 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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