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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은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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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ungsroman’ “당신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의기양양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뭐야, 독일어 같은데 build ...” “성장소설이란 뜻이지, 에헴”
 
가을이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다. 개주인과 나들이를 나서며 역시 한껏 뽐내는 가을이와 나섰다.

우리의 발길은 마을문고로 향했으며 킁킁 영역표시 바쁜 가을이는 가을이라는 제 이름의 계절이 왔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듯 하다.
 
가을이를 도서관 문 앞에 매어놓고 올라갔다. 나무 난간 디자인마저도 개끈을 걸기에편리하게 만들었다니 이래저래 마을문고가 마음에 든다. 목차번호 800으로 시작되는 서가에 서서 무얼 고를까. 고민하는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앵무새 죽이기’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보자 영화가 떠올랐으며 그레고리펙이 생각났다. 미국 대공황 때 하퍼 리라는 여성이 쓴 이소설은 당시 미국남부 앨러바마의 부조리한 흑백문제와 소외된 인간을 다루고 있다.
 
어린 여자 아이의 눈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소녀의 아버지는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인데 홀아비로 어린 남매를 소신 있게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라 치부하지 않고 아이들을 인간으로 대하며 대화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점이 소설 내내 돋보인다.
 
이 책이 성장소설이라 하지만 청소년보다도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이 꼭 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반드시 읽어야할 목록이리라.
 
찰스 디킨즈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일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핍이 소년인 점을 생각하면 작가
하퍼 리는 소녀를 화자로 등장시켰다. 소외된 여성 그것도 나이어린 소녀를 화자로 등장시킨 점이 과감하다고 생각된다.
 
 ‘앵무새죽이기’의 소녀 스카웃과 ‘위대한 유산’의 핍은 닮았다. 숙녀가 되어가는 과정,신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위대한 유산’ 역시 영화로만 봤고 책으로는 안 읽었기에 다음에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 영화를 본 후 영화를 잊어버린 지금 새삼스레 책을 찾아 읽는 나를 보면 클래식은 클래식인 모양이다. 하퍼리는 이 책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퓰리처상도 상이지만 미국 예술원회원이 되었고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Medal of Freedom)을 받았다고 한다.이 책이 영화화 된 후 그녀는 주인공 그레고리펙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레고리펙은 손자 이름에 작가 이름인 하퍼를 붙였을 정도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좋아하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아기에게 붙이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는듯하다. 무슨 2세 등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의 이름이 같은 경우도 종종 있어 우리를 좀 혼란스럽게도 한다.
 
소설 ‘위대한 유산’ 마지막장 쯤을 보면 주인공 핍이 다시 찾은 고향의 비디와 조 부부는 아들 이
름을 주인공 핍의 이름을 따다 붙였다. 우리는 감히 어른의 이름을 불러도 안되지만 똑같이 지을 수 없다. 어른과 아이 사이가 그래서 먼 지도 모르겠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이들의 가장 신뢰하는 대화상대는 바로 그들의 아빠다. 당시에는 티브이도 없고 전화만 겨우 있었고 그리고 책이 있었다. 지금 인터넷 시대에도 아이들에게 아빠가 가장 신뢰하는 대화상대일까?
 
 
[2012년 11월 19일 제36호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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