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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소박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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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모찰트의 휘가로의 결혼에서 나오는 노래처럼 요즈음의 좋은 바람은 계절을 생각게 하고 감동을 하게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도 한다. 이는 지독한 여름을 지낸 후라서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보석 같은 날씨라는 표현을 쓸 만큼 우리도 날씨에 민감해졌다. 우리가 언제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살았던가?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날씨 이야기를 심심찮게 꺼내는걸 보고 삼십 여 년 전인 그때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날씨 이야기로 말문을 여는 그들을 되돌아보면서 부딪치기를 미리 피하는 대화기술이 외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도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된 지금 날씨 타박도 날씨 감탄도 하기에 이르렀다. 버드워칭이라는 취미도 그랬었다. 세상에 무슨 취미가 새 감상일까, 독서나 음악 감상이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고 이리저리 새를 찾아 여행 다니는 것이 취미가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역시 먹고 살기가 나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담 먹고 살기가 해결된 지금 우린 취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보다 늙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을 보면 글쎄다. 내가 모시는 시어머님과 혼자 사시는 친정어머님을 보면서 구십이 낼 모레인 이 여성들의 삶을 반추해 보게 된다.
평생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해보고 그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인생인줄 알았던 그들이다. 시간을 내서 자신을 위해 뭘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남존여비 시대에 태어나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살다보니 고령화시대를 접하게 된 그들은 아기 걸음마 하듯 이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경로당에 모여 식사를 하며 외로움만 달래실 게 아니라 구순에 시집을 낸 일본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들도 자신을 돌아다 볼 줄 알면 좋겠다.

모진 더위는 갔고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이때 동네 벤치가 텅 비어있다. 낙엽 쌓여 정취 있는 거리도 비어있다. 그 벤치에서 사색하는 노인, 책 읽는 노인, 아름다운 길에서 산보하는 노인을 보길 원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2012년 9월 25일 제3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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