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7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서영숙여사

 

내가 서영숙 여사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연이 서여사에게서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건강미와 안정감과 지구사랑이 묻어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인생은 조금은 더 즐거워지는 모양이다.
 
 
어제 서영숙농장에 갔다. 실은 농장이름이 없어 내가 붙인 이름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파주시 적성면 서영숙여사 밭에 쏟아져 내리는 한 낮이었다. 태양이 적성면에 작열할 때 ‘태양은 가득히’ 라는 프랑스 영화 대신 나는 육십여 년 전의 육이오를 떠올린다.
 

그날도 이리 태양이 쏟아져 내렸을까? 아니 그때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없었으므로조금은 덜 더웠을까? 저기 임진강 저쪽 북쪽에 보이는 산꼭대기에 그날도 안테나가 있었을까? 태양과 초록이 한껏 어우러지는 적성면의 산과 들에서 나는 그날의 전투를 애써 읽어본다. 무장한 듯한 낯선 동네 이름들이 그렇고 무슨무슨 전투비가 그렇다.
 
 
간간히 보이는 국방색 군인들과 역시 국방색 군트럭들이 또 무자비한 회색 콩크리트로 된 도로차단 건축물들이 휴전선 가까운 지대임을 알려준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중이구나. 休戰일뿐. 나는 지난번에 심은 토마토 이랑에 쪼그리고 앉
아 무성한 잡초들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몸에 좋다는 쇠비름이란 잡초는 뽑아서 따로 봉지에 담는다. 억세기로 소문난 명아주 풀은 얼마나 질긴지 지팡이로도 만들 정도라고 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 손으로 힘껏 당겨 뽑아낸 다음 붉은 흙을 탈탈 털어 토마토 밭에 덮는다.
땡볕에 뿌리를 들어낸 잡초들은 생기를 잃게 되고 흙으로 돌아가 토마토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토마토는 인간에게 양분을 제공하고. 유기농에서는 잡초도 버릴 것이 없다.
 
 
쌀뜨물 심지어 소변까지 모았다가 다시 흙에 보낸다. 집에서 모아놓은 음식물 찌꺼기를 냄새날 새라 꽁꽁 묶어묶어 차로 날라 땅을 파서 묻고 효소를 뿌리고 뽑아낸 잡초로 이불을 덮어 두엄(compost)을 만든다.
 
쇠비름은 아낙의 손으로 뽑고 다듬어 씻어 쪄서 말리고 물에 불려 요리해 먹는데 그 복잡한 나물공정이라는 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하얀 무명 빨래 공정처럼 한국 여자들을 일에 매어둔다. 나는 그럴 수는 없다. 가지고 온 한보따리 쇠비름공정은 나의 시어머님 몫이다. 이미 다섯 번째 공정에 들어가 다듬어 씻어 쪄서 채반에 말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갖고 있는 약간의 농사 지식은 서영숙여사가 가르쳐주었다. 서여사는 오랜 텃밭 경험과 유기농 사랑으로 농업지식이 풍부하다. 묵향 이미지의 퇴직 공무원인 서여사 남편은 당연 서여사가 꾸준히 쌓아놓은 농사지식에 의존한다. 이제는 든든한 물 당번이 되었다.
 
 
지하수를 이용한 스프링클러(sprinkler)로 이 도도한 가뭄에 도전하고 있다. 유기농에 어느 때 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에 서여사 농장은 혼자 관리하기에 터가 너무 넓은 느낌이다. 따라서 쉴 틈을 주질 않는다. 우리에게 텃밭을 세 이랑이나 떼어주고도 아직도 넓다. 왜 친구들에게 더 분양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별로 농사짓는 일을 좋아하지들 않는단다.
 
 
농작물을 공짜로 줘도 가져가면 일이 많다고 싫어한단다. 한 참을 흙에서 씨름하는데 풍악이 요란하다. 타는 듯한 날씨에 쿵작쿵작 확성기 소리는 더위를 더해주는 듯하다. 무차별 소리공해에 주말 농부 넷이서 성토를 시작한다. 도시사람이 시골에 왔을 때 지켜야할 수칙 1호가 소리공해를 말하지 않는 거란다.
 
 
 바로 옆 중학교에서도 아무소리 안하는걸 보면 학교나 농부 등 모든 마을사람들이 서로 다 아는 처지라서 그래야한단다. 작년부터 똑같은 테이프로 같은 뽕짝가요를 계속 들어왔단다. 면이나 파주시청에 이 소리공해를 보고 한다면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타깃이 되어 뻔한 결과라는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 마을에 이 확성기 소리가 과연 위안일까? 적성면의 문화를 존중해서 참아야할까? 친정어머니가 싸주듯 건네주는 보따리를 차에 싣고 한 시간을 달려 집에 왔다. 갓난아기색 연두빛 강낭콩, 골이 잔뜩 난 청양고추, 하얀 분감자 그리고 쇠비름은 노동과 땀의 댓가이자 소리공해를 참아낸 댓가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온 몸이 쑤신다. 농부들이 다리와 허리가 쑤시는 병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2012년 7월 20일 33호 제13면]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