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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잠깐 일본산책

 
하네다 공항 리무진버스 정거장 무인발매기에서 표를 사고 기찌조지(길상사)행 버스에 올라탔다. 한문공부를 좀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한자만 알면 이곳 여행은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다.
 
더는 탈 사람이 없는데도 시간을 맞추느라 꼼짝 않고 서있는 리무진버스. 출발 시간이 되자 허리를 깊게 굽혀 인사를 하는 지상 안내인을 보니 이곳이 바로 소비자를 왕으로 섬기는 시장경제 현장임을 느낀다.
 
낙엽 한 장 굴러다니지 않는 말끔한 주택가를 강아지와 걸어 보았다. 한국이 높은 아파트들로 桑田碧海가 될 동안 일본의 이 동네는 죽 그대로였다. 목조 주택들 지붕 사이로 가이쯔까향나무들이 단아하다.
 
꽃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현관과 대문을 보고 유럽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오랜 구호 ‘脫亞入歐’가 떠올랐다. 개 산보를 시킬 때는 약간 까다롭다. 개주인은 물병을 들고 다니며 강아지 오줌자국을 씻어내야 한다.
 
아니면 노인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 좁은 골목길에 임무를 다하는 비질을 하는 노인이 아날로그 풍경이 鄕愁를 자아낸다. 목조주택 난방시설이 아파트만 할리 없다. 아침에 눈떠 머리맡 안경을 찾아 쓰니 안경이 싸늘하다.
 
그 싸늘함에서 자리끼에 살얼음 끼던 아침이 생각난다. 그런데서 사는 사람들은 목욕탕을 자주 찾을 것이다. 동네 목욕탕에 갔다. 뭐가 그리도 미안한지 미안하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우에노 역 근처 식당에서도 좁은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를 아래서 기다렸더니 고맙다고 하며 지나친다.
 
나는 한국남자들에게서는 이런 인사를 기대하지 않는다. 사무라이 시대에 칼을 차고 다녀 여차하면 불상사가 날까 지레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모양이다. 튀면 왕따 당하는 사회라고 한다. 거리의 색채는 별로 튀는 색이나 글씨가 없고 자동차들도 검은색, 흰색, 은색, 회색이 주종이다.
 
동경문화회관에서 열린 나의 조카 연주회에서 느낀 것도 일종의 일본인들의 집단행동이다. 사실 Henry Vieuxtemps의 비올라 소나타는 그리 흔한 음악은 아니다. 1악장이 힘주며 끝나자 한 사람도 박수 실수를 하지않아 놀라웠다.
 
보통 악장이 끝나면 한둘의 박수가 나오기 마련인데 일본인들이 음악에 조예가 깊어 박수를 안 친 것 갖지는 않고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자신 있게 박수를 치면 그때 따라서 치는 모양이다. 그래야 튀지 않을 것이다.
 
반면, 우린 칼이나 총을 차지 않아 그런지 별로 조심스러울 필요가 없다. 부딪치면 어떠냐, 소리 나면 욕을 해대면 된다. 칼로 베일 것도 없고 총에 맞을 일은 없으니 그리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 우리말에 특히 욕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듯하다. 일본어에는 바가야로(바보) 라는 욕이 전부라고 한다.
 
튀는 걸 싫어하는 집단성향의 나라 사람들을 보니 한국 사람들의 분방한 면이 어쩌면 부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경문화회관 옆에 국립서양미술관이 있다.
 
들어갈 시간은 없는데 저만치 어디서 본 듯한 조각이 미술관 앞뜰을 장식하고 있다. 발길은 자연스레 조각으로 다가간다. 인터넷에서 본 로댕의 ‘地獄의 문’이라는 작품이었다. ‘생각하는 사람’ 또 ‘깔레의 시민’도 있었다.
 
과연 로댕이었다. 전율이 흘렀다. 얼굴을 로댕으로 장식한 도쿄국립서양 미술관은 우에노 전철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맞이하고 있었다. 로댕을 보고싶거든 프랑스까지 멀리 가지 말고 도쿄우에노전철역으로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2012년 2월 17일 2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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