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캠퍼 간의 배려… 자연에 대한 예의 배울만

 
스위스의 캠퍼들
 
 
집 떠난 불편함을 경험시켜보자는 생각에 손자와 캠핑이란 걸 가보았다. 스위스 남동쪽 이태리 국경 근처 메리데(Meride)로 향했다. 메리데는 공룡등 중생대 동식물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어 유네스코가 보존마을로 지정한 곳이다.

모든 건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늘 그렇듯 계획보다 늦게 출발하여 밀린다는 스위스 쪽 도로를 피해 이태리 북부를 관통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이태리 고속도로 무인 톨게이트에 다다라서야 아차, 유로가 한 푼도 없음을 알아챘다.

아이가 살고 있는 스위스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다. 1년간 유효한 고속도로 주행 스티커만 차에 붙이고 다니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몇 년간 한 번도 조사당한 일이 없지만 만에 하나 스티커없이 다닌 것이 적발되면 개인신용에 금이 가게 되니 실로 무서운 방법이 아닐수 없다.
 
시간도 휘발유도 경비도 절약되는 조용한 행정이다. 이태리 톨케이트에서 유로는 한 푼도없고 크레딧카드도 두고 오고 스위스 캐쉬카드와 스위스프랑뿐인데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 때 차에서 내려걱정스레 서있던 막내의 소리가 들린다.
 
‘어머, 여기 동전이 떨어져있네’ 6유로가 필요한데 꼭 2유로짜리 동전 3개가 땅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장면이 떠오른다. 화면에는 목숨이 위태위태한 소녀가 호수 가에서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한다. 소녀가 눈을 뜨니 물 위에 작은 보트가 떠있고 소녀는 탈출을 한다.
 
영화 같은 위기 탈출로 한밤에 캠핑장에 도착하니 적막강산이다. 텐트와 캐러반 캠퍼 들이 어둠 속에늘어져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모두들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상상하는 캠프장엔 모닥불과 기타와 노래 소리가 들려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다.
 
소곤소곤 살금살금 간이텐트에 여장을 풀고 잤다. 다음날 아침에보니 주변에는 대부분 독일, 네델란드 등 북유럽 사람들이다. 이참에 그 사람들의 여가를 보내는 모양을 보게 되었다. 키가 큰 그들은 무뚝뚝해 보이며 마주 쳐도 인사를 안 한다. 내가 먼저 해야답이 올 정도다. 그들은 여가 속의 캠핑장 풍경마저 엄격하게 연출하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깔끔, 정돈이 몸에 배어 있다. 이제 막 도착한 70대 노부부가 우리텐트 옆에 둥지를 틀고 있다. 노부부는 노련하게 바닥에 비닐부터 깔고 설명서대로 차근차근 텐트를 쳤다. 아무도 안도와준다.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 그들에게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다.
 
노인들은 텐트를 세우는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텐트는 제법 커서 부엌이 따로 있고 밖에서는 잘 안보이게 되어 있다. 노부부는 햇볕을 쪼이며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텐트 저 텐트 사람들이 모여 떠들며 노는 모양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부부가 카드게임을 하거나 먹는 것도 간단하기 그지없다. 부부 둘이서 시간 보내는 데 매우 익숙해 보인다. 캠퍼들은 화분도 기르고 화병에 꽃도꽂아 놓는다. 쓰레기통도 들고 오며 텐트주변은 늘어놓은 물건 없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비를 들고 주변을 쓰는 모습이 캠프장 풍경이다. 임시숙소라도 남들에게 되도록 즐겁게 보이길 원하는 것 같았다.비록 자기 집이라도 공적 소유개념을 적용한다더니 바로 그런 것인가 보다. 공적 소유개념을 존중하는 결과가 사회를 명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밤새 비가 내렸는지 산더미만한 이웃 세퍼드 개가 텐트 속에서 잔 모양이다. 텐트밖에 내 놓은 개밥그릇이 얼마나 청결한지 감탄을 하며 지나쳤다. 개가 캠프장에 머무르는 비용은 하루에 5스위스프랑(5000원)이란다. 이런 것을 아는지 캠프장에 오는 개들은 한결같이 점잖다.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길을 들였나보다. 캠핑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겐 조용한 것이 다른 캠퍼들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고 자연에 대한예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고 여름 휴가 내내 조용한 텐트 생활을 즐긴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듯하다.
 
우리의 프로그램 중독증과 비교가 된다. 아침 먹으면 점심 걱정, 점심 후엔 저녁걱정. 식사와 식사 사이엔 낚시, 그 다음엔 수영, 탁구, 배드민턴. 또 짬짬이 차타고 포도밭도 좋고 박물관도 좋고 중세마을도 좋고 어디 관광이라도 다녀야한다.
 
캠핑기간이 짧으니 그 짧은 시간을 쪼개 뭔가 더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닐까? 오늘은 80대 할머니 둘이 작은 텐트를 치고 있다. 할머니들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더니 캠프장내 식당에서 식사를하는 것이 눈에 띠었다. 텐트끼리 모여와 하하 시끄럽게 노니는 법이 없이 각자 자연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듯하다.

아이들이 낀 가족 캠퍼들도 많다. 아이들은 훈련을 잘 받은 듯 아이들끼리 모여 놀아도 위험하지 않고 안심이 될 정도다. 크게 시끄러워 부모나 남에게 큰 부담이 주지도 않는다. 24시간 따라 다녀야 하는 내 손자도 이런 것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2011년 8월 18일 2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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