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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뜻밖의 여유… 뮌헨을 탐색하다

 
◈ 뮌 헨
 
 지난 달 뮌헨을 거쳐 제네바로 가려고 인천 공항 탑승장에 앉아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탑승소식은 없고 김빠지게도 연발 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중국 상공 비행 금지로 센양서 묶여 있던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인천에 와서 급유 하는데만 한 시간 이상, 또 다시 중국 상공 비행 금지로 해서 여차여차 두 시간이나 늦게 뮌헨으로 출발했다.
 
 이는 많은 승객들이 뮌헨서 연결되는 다음 비행기를 놓치게 됨을 의미한다. 의외로 침착한 승객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래야할 것 같았다. 가만, 화가 복이 되는 법도 있는 법이다. 나의 상상력은 이런 식이었다. 비행기를 예약할 때부터 혹시 비행에 차질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뮌헨 구경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9년 전 소피아에서 연주해야할 금호사중주단이 바로 뮌헨공항에서 악기를 든 채 닫힌 비행기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았던가. 뮌헨엔 징크스가 있다. 말이 씨가 되었다.‘ 나 지금 하늘에서 거는 거야, 뮌헨에서 묶고 간다. 공항에 나오지 마라’ 비행기에서 딸네로 건 위성 전화엔 딱 세문장 뿐이었다. 스츄어디스가 하도 싸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항공사측은 나 같은 승객들을 공항근처 세라톤에 숙박시켜 주었다. 그곳에서 생피터스브르크로 부임차가는 현대자동차 젊은이, 한국 다니러 갔던 프랑스 한국 부부를 만났다. 모두 다음날 이른 비행기로 떠났지만 저녁 비행기로 바꿔버린 내겐 느긋한 시간이라는 것이 기대와 함께 남아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현대자동차 젊은이는 부러워했다. 그에겐 어디가나‘ 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며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 한국에 남겨놓은 아가와 아내, 3개월에 한주씩 고국 방문한다는 쓸쓸한 이야기를 했다. 또 밖에서 만드는 현대자동차가 훨씬 좋고 싸다는 이야기, 한국 내 소비자들은 봉이라는 이야기, 기술개발에는 투자를 안한다는 한국재벌이야기를 쓸쓸히 나누었다.
 
 다음날 그와 함께 공항에 가 나는 짐 맡기는 곳으로 그는 출발장으로 올라갔다. 일에 떠밀려 지내는 우리 청년의 행복을 빌었다. 그 덕에 내가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한나절이나마 뮌헨을 돌아보게 되었다. 근10년간 유럽에 살아 본 내가 독일 땅에 발을 디뎌보지 않았다면 대부분 놀란다. 몇 년간 유럽에 주재하러 오는 한국인 가족들은 여름이면 자동차로 온 유럽을 섭렵했다.
 
 늘 바쁜 한국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은 곳을 보아야했다. 독일이, 피요드르가, 안달루시아가 체코가 빠질 리 없다. 뮌헨하면 떠오르는 게 전혜린, 이미륵 그리고 슈바빙이란 거리 이름이다.
 
 슈바빙이란 거리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올까. 하루 전철표 10유로 짜리를 사서 뮌헨 시내로 향했다. 창밖은 어쩌면 그리 편편한지 게다가 검은 흙을 보니 바바리아 지방이 곡창지대임을 알 수 있다.
 
 산이 보이 질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편편한 지대를 보니 신기하다. 기차 길을 놓아도 고속도로를 놓아도 우리보다 훨씬 수월할 것 같다. 표지판, 전철 안내방송은 죄다 독일어로 되어있고 중요한 지점에서만 영어를 덧붙여준다. 무슨 Bahn, Stein 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비행장 표지는 비행기 그림을 함께 넣어주니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도 김포나 인천공항 안내 글씨와 함께 비행기 모양을 그려 넣어주면 외국인들이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듯. 호텔 직원이 가르쳐준 마리안플라츠역에서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인사동쯤 될까. 관광객들과 뮌헨 사람들이 일요일 산보를 몽땅 이 지역으로 나온 듯 오래된 성당들과 문닫은 고급 아케이드, 차 없는 거리,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가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흥겨운 아이들스케이트장 그리고 맥주와 소시지, 중국인 신랑 신부가 오들오들 떨며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는 모습, 그 모습에 나를 비롯한 늙은이들이 부러운 웃음을 보낸다.
 
 그런데 내 앞에 한 청년이 가슴에 광고를 붙이고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Dark History in English' 나 치즘이 태동한 장소가 뮌헨이며 슈바빙에 게슈타포 본부가 있었단다.
 
 내가 서있는 마리안광장에서 얼마나 많은 음모를 그리고 선동이 있었을까. 진실을 거부하고 거짓이 판치던 과거를 들추어내 관광상품화하는 이유는 뭘까. 진실을 알리려는 젊은 움직임으로만 봐야할까. 히틀러를 감상적으로 부각시키려는 현대판 음모일까. 자신의 나라의 만행 역사를 잘 모르는 일본 젊은이들이 겹쳐지고 역사 교과서 싸움이 겹쳐졌다.
 
 뮌헨의 인파속에서 감동이 일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설레는 거리에서 성숙한 젊은이들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다. 게슈타포 본부가 있었다는 슈바빙은 가지 않기로 했다. 다정한 비행기 그림 표지를 따라 지하철을 탔다. 땅 밑으로는 별로 안가고 평야를 달리는 지하철을 탔다.
 
창밖은 스산한 겨울나그네 풍경이다. 옆에 한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다가다 다투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자유기고가 오민경
 
[2009년 12월 23일 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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