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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우리말 번역 그리 어려운가

노벨 문학상 유감
 
 

 벌써 몇 년 째, 해마다 이때쯤이면 ‘혹시나’ 하던 기대가 ‘역시나’가 되어버린다. 시인 고은 씨의 주변에는 미리부터 진을 친 기자들로 붐볐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은 올해도 비껴갔다.

 100년이나 더 된 세계적인 권위 있는 노벨상을 우리가 아직 받지 못했다니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나라의 문학은 역사가 깊다. 일제시대에도 명맥을 이어왔고 20세기를 살다간 사람까지 합치면 문학 인구가 얼마인가? 우리가 보기엔 주옥같은 문학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우리가 거기에 못 끼일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번역문제일 것이다. 왜 우리는 번역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아마 우리말이 번역하기가 굉장히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그 많은 형용사, 사투리 같은 것들은 번역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우리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해 놓으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한다. 원래의 뜻이 옳게 번역이 안 되기 때문일 거다. 번역이 발달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양쪽 언어와 한국 문화를 동시에 통달한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번역 전문가를 기르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문화를 통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를 기른다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전략적 사업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은 바로 전문가 양성 투자에 대한 보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우리말이 우리끼리는 쉽고 편리하지만 우리 문화권 밖의 사람들에게는 난해할 수 있기에 번역의 비중은 매우 높은 것이다. 언젠가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은 번역에 대한 비평서가 꼭 따라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목숨을 걸고 정확하게 번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번역에 대한 후한 보상도 큰 역할을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싸구려 번역 양성소 같단다. 이 대목은 우리가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다.

 소피아 대학에 한국어과가 설치된 후 불가리아인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불가리아어로 번역을 했다. 키릴문자로 된 한국문학을 비록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보니 대견했다. 한국 외국어대학에도 불가리아어과가 생겨 요르단 욥코프의 ‘발칸의 전설’을 한국인이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불가리아에 살며 불가리아어를 모르는 내가 불가리아 문학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번역가 신윤곤씨 덕분이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며 이제 그 아름다운 작품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겨우 찾아 그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자랑스러운 키릴문자를 가진 불가리아도 아직은 노벨문학상을 못 받았다.
 
 키릴문자의 번역문제와 국력의 문제가 있을 듯하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훑어보니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가 주종이고 러시아어, 스웨덴, 덴마크, 포루투갈어, 폴란드어, 이태리어, 체코, 유고, 헝가리어, 그리스어, 터키어,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일본언어들이다. 여기에 국력과 반체제문학도 한 몫 하는 걸 알 수 있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파랗다 푸르죽죽하다’ 를 어떻게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2010. 10.

[2010년 11월 15일 13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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