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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입문
 
 
 
 
 나는 노인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제목에 귀가 쫑긋해지고 어느 나라에 가서나 노인들의 삶에 관심이 가고 누굴 만나면 대화라는 게 결국 노후 이야기로 귀결되는걸 보면 나는 영락없는 노인이다.
 
 아직 40대처럼 느껴지고 스스로 인정하기가 싫지만. 돈과 건강만 따라주면 해결 될 듯한 노인문제가 그게 아니다. 노인은 외로움에 취약하고 심심한 걸 잘 못 참는다. 평생 자기 시간을 보내는 단련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 시간은 자녀를 위해 희생을 한 셈이다. 보상심리가 문제를 복잡하게도 한다. 개인의 노력과 태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여름 유럽에서 나를 사로잡은 남자는 축구선수 베컴이 아닌 97세 앙드레 노인이다. 귀가 밝고 조용하며 잔잔한 인상의 이 노인을 자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주 그를 방문하는 걸 목격했다. 자손들은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긴다.
 
 그가 돈이 많아서는 절대 아니며 매력 노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젊은이들이 다가올 정도의 매력 있는 노인을 만들까. 몇 년 전에 법정스님을 길상사에서 뵙고 차를 마시며 한 방에서 한 참을 앉아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드물게 맑고 향기로운 분위기였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아는 멋진 노인을 만나는 젊은이는 행운이다.
 
 노인들은 잔소리 대신 그냥 풍기는 모습만으로도 몫을 다 하신다. 20년 전쯤 에드몬드 힐러리경과 오찬을 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를 보는 순간 하나의 큰 산이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는 산을 오르고 난 안도의 표정이 있는 듯 했다. 그는 인생에 대한 모든 비밀을 다 아는 듯 했지만 말을 하지 않기로 산과 약속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언제까지라도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앙드레 노인이 80 중반일 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병원에 가서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보호자 없이 온 팔순 노인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병원이나 사회적 태도의 성숙함을 절로 느낀다. 환자의 보호자 서명 요구나 가족 간병 요구가 당연시되는 한국 병원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와 대조적이다.

 독립된 노인 앙드레 씨는 몇 년 전에 자손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었을 때도 조용히 혼자 기차타고 가셨다한다. 혼자 시장가고 버스타고 요리하고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한다. 일주일에 두 번 도우미가 정부에서 파견되어 나올 뿐. 알프스 산에서 홀로 트랙킹을 하는 노인을 봤을 때 외로워 보이기는 커녕 아름다워 보였다. 노인과 자연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일 년에 몇 번 볼까 말까 한다. 잊어버릴 때쯤 되면 나타난다. 그래도 그들은 자녀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얼마 전 TV 인간극장에서 100세 노인 ‘정 할머니’ 를 봤을 때 그 아들이 마치 아기 다루듯 어머니를 다루는걸 보았다. 아들은 어머니와 거의 한몸으로 여겨질 정도로 대하며 그런 아들이 효자라고 칭송 받는다.
 
 노인은 아들의 보호아래 행복해 한다. 자기의 주체적인 삶이 없는데 왜 행복을 느낄까? 2010. 9
 
[2010년 10월 1일 1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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