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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바이런을 만나다

어떤여름 (2)
 
 
 
 호수를 내다보는 옛 건물들은 고집스럽게도 키도 늘리지 않은 사려깊은 현대건물들과 조화를 이룬다. 옛 것과 새 것의 호들갑스럽지 않은 만남으로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했을까. 어느 식당을 고를까. 이럴 때 식당 모양새 보다는 식당에 앉은 사람들 품을 보고 선택하기 마련이다.
 
 기특하게도 바이런이 머물던 집이라고 새겨 놓았다. ‘시옹의 죄수’ 를 쓴 바이런이라는 작아서 더 돋보이는 글씨와 함께. 횡재를 한 기분이다.

 한 때 영국 시인이 머물던 곳이 지금은 호텔 엉글르떼르(영국호텔)가 되어 기왕이면 스토리가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 또한 그렇게 끌려 들어섰으며 용케도 하나 남은 구석 테이블에 안내된다.
 
 내게 바이런은 발음하기 쉬워 더 기억이 되는 이름에 영국 낭만파 시인이었다는 것, 그가 했다는 말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니 유명해져있더라‘ 또 ‘바이런 적 인물’ 이라는 말이다.
 
 우울하며 반항적이고 잘 돌아다니고 죄를 짓고 후회 안하는 젊은 데까당. 그런 그가 오토만 터키에 대항하는 그리스전에 참여했고 그곳서 죽었다는 사실, 포르투갈의 ‘쎄떼 아이스’라고 신트라 가는 숲길에도 바이런의 흔적이 있었으니 짧은 생애에 그는 많이도 돌아 다녔다.
 
 그가 바로 이 집에 머물렀고 지금의 나처럼 이 호수를 바라다보았을 것이다. 당시 그는 나처럼 차를 몰며 매끈한 길로 시원스레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네바 호수(레만호수)를 노를 저어 느릿느릿 여기 로잔까지 나아가 어느 날엔 브베이, 몽트르를 거쳐 시옹성에까지 갔을 것이다. 가서 몸서리쳐지는 돌로 된 물가의 감옥을 보고는 거기서 남은 평생을 억울하게 보냈을 역사속의 어느 정치범을 떠올렸을 것이다. ‘시옹의 죄수‘를 남겼다.

 인터넷을 뒤져 그의 시 ‘사르다나팔루스’에들라크루와가 그렸다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을 보았다. 파괴적인 살육 현장을 즐기는 사르다나팔루스 왕의 웃는 얼굴이다. 18세기말 예술가들은 너도 나도 세기병에 걸려서, 파괴스런 자신의 삶 때문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데 바이런은, 저주스런 자기 세대의 병에 오히려 유혹적인 매력을 부여했다.

 해서 후에 나타나는 낭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르다나팔루스나 시옹의 죄수를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고 짧은 시 하나 올려본다.   2010. 7 꼬쏘네에서
2010. 7 꼬쏘네에서
 

[2010년 8월 31일 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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