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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유럽의 여름과 열정 사이에서

 
 
마치 전쟁에라도 나가는 듯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썬크림을 바르고 선글래스로 무장한 후 심호흡까지 하고서야 문을 나선다.

밖은 고흐의 태양만치나 이글거린다. 그의 열정이 예술로 태어나는 그림 속 노란 밀밭 노란 태양 또 노란 해바라기가 이곳 꼬쏘네에 가득하다. 밭 한가운데서 화폭 앞에 선 고흐는 나와는 한 참 다르게 분명 그 빛들을 다정하게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을 것이다. 내가 햇빛을 피하게 된 데에는 홍수 같은 인터넷 건강정보가 있으리라.

유럽의 여름은 밤 10시까지도 환해서 아이들은 일찍 자리에 들지 않는다. 젊은 엄마는 아이 재우는데 어느 때 보다 더 공을 들인다. 오늘 밤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이겼다고 밤 11시 넘은 이시각에 빵빵 자동차 행렬이 마을을 누비고 있다. 돌집 옛 마을은 귀를 세운다.
 
젊은 에너지들이 한 여름밤을 수놓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스위스가 초장에 떨어져나갔어도 사람들은 로잔 호숫가 광장에 모였다. 이 나라에 사는 스페인과 독일 사람들이 붉은 악마처럼 모였다. 티브이 방송이 그 광경을 중계 해준다.
 
꼭 내 나라가 아니라도 흥겨운 것이 월드컵인 모양이다. 그림 같은 모르즈 아니 오드리 헵번이 살았었다는 모르즈, 레만 호숫가를 걸었다. 이렇게 예쁜 길인데 관광객도 드물고 산보 나온 사람들 숫자가 그리많지 않다. 돌담 귀퉁이에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fair play’를 하라는 예방 차원의 간단한 문구는 조용하지만 엄하다.

“fair play”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fair play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월드컵도 fair play를 배우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한 초등학생을 더 큰 청소년들이 집단 구타한 사건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fair play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른 스스로가 fair play라는 말을 우습게 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과외대신 스포츠 활동 기회를 많이 주면 점잖은 사회가 올까? 점잖은 사회의 비밀을 캐고 있는 못 말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재즈소리가 들린다. 발길은 소리를 따라간다.

이 지방 포도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로 노인들이 한 잔 걸치며 거리 재즈연주를 즐기고 있었다. 앉아서도 리듬 따라 까딱까딱 흥겨운 한 커플이 참지 못하고 일어난다. 비좁은 테이블 사이에서 부부는 나이만큼이나 익숙한 춤을 즐긴다. 여름이고 노년은 풍요롭다. ( 2010. 7)
 

[2010년 7월 30일 1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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