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5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쉿! 건물이 말을 한다 "조용하라"고

 
 
<1>줌토르
  
 
 
깜짝 환갑 선물로 받은 호텔 패키지, 그것이 스위스 발스 온천 호텔이라니. 기특한 내 딸. 어찌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건축물을 생각해냈단 말인고. 기죽이는 우아한 브로셔를 살펴보니 저런저런, 전신 마사지까지 예약되어 있다.

깜짝 환갑 선물로 받은 호텔 패키지, 그것이 스위스 발스 온천 호텔이라니. 기특한 내 딸. 어찌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건축물을 생각해냈단 말인고. 기죽이는 우아한 브로셔를 살펴보니 저런저런, 전신 마사지까지 예약되어 있다.
 
  걱정스럽다. 어디까지 벗어야하나? 외국인 남자 마사지사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나? 난감하다. 맘 같아서는 마사지는 취소했으면 딱 좋겠는데. 내 늙으면서 작정한 것이 하나 있으니 고집을 안 부리겠다는 것이다.
 
참자. 환갑이란 것은 왜 있어서 애들에게 그리고 내게 부담을 주는지. 다행히 마사지사는 독일계 여성이었으며 그녀의 손길은 알프스 풍경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것이 온화함이라면 아프게 눌러 대서 시원한 우리네 식은 화끈함이리라.
  
건축의 노벨상격인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는 줌토르(Peter Zumthor)의 Vals떼르므(Therme) 온천은 스위스 다보스 근처 산골짜기 마을에 숨어있으며 독일어 지역이다.
 
불어에서 독어 지역으로 이동을 하니 독일어쪽 사람들이 좀 더 엄숙하고 반듯해 보인다.
 
 ‘메르씨’에서 ‘당케 쉔’이라- 어쩐지 좀 딱딱한 게 차렷 자세가 어울리지 않은가. 아무튼 고등학교 김승자 선생님 독일어시간 이래 ‘제어 구트’, ‘당케 쉔’을 써먹을 기회가 드디어 왔다. 
 
돌과 물밖에 없는 산골짜기 마을에 있는 돌과 물을 이용해 줌토르는 예술작품을 낳았다. 멀리서 가져온 재료가 아닌 있는 것을 이용한 건축가의 생각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건축물이 명물이 되고 마을에는 일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구불구불 산마을 골짜기에 겨우 들어섰지만 당연히 눈에 띄어야할 명물은 보이지 않는다.
 떼르므 호텔을 통해 온천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건물을 느끼게 된다.  건물이 반 쯤 지하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상 받을 정도의 유명한 건축물이라면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어야하지 않은가.
 
  ‘눈에 띄네’와 튀는 것에 어지간히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줌토르의 건축물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물속에서 또 물 밖에서 돌로 된 벽들에서 흐르는 물에서 돌과 물과 바람과 함께 한다. 돌건축은 선이 굵고 절제되었으며 그런 돌건축물의 언어는 다분히 시적이어서 사람들은 조용하다. 건물 전면 배경은 하이디라도 곧 튀어 나올듯한 산이다.
 
  산, 산이 바로 눈 앞 가득이다. 내일은 가파른 저길 꼭 올라가 봐야지. 다음 날 엉금엉금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 마을을 굽어보았다. 제주도가 그랬던가 마을의 거의 모든 지붕들이 돌로 덮여져있다. 이 때 돌들은 기계로 자른 반듯한 스위스적이라고 생각했던 질서정연한 기와가 아니다. 돌들은 제주도의 그것처럼 자유분방하게 이리저리 포개져있다. 물과 돌밖에 없는 스위스의 산마을 지붕은 이랬다.
 
  기와로 쓰이던 흔하디흔한 돌들을 현대적 건축에 끌어들여 아름답게 표현한 줌토르의 안목은 놀랍다. 단순하고 단호하고 조용한 표현들. 벽에 붙은 그림 장식하나 없는 돌 건물에 물이 떨어지며 만드는 뻘겋게 녹슨 물이끼들이 유일한 장식품이다.
 
  물과 돌 바람 햇빛 그리고 인간줌토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물과 돌 속에서 사색을 하도록 한다. 줌토르의 의도를 읽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그리고 고요. 나의 고요에 대한 경험은 언젠가 길상사에서 법정스님을 뵈었을 때다.
 
방 안에서 그냥 사람들과 법정스님이 한참을 함께 앉아 있었다. 스님이 말씀을 안 하시니 나머지도 말을 안 했다. 답답하다거나 후딱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감히 안 들었으며 스님을 따라 나서 공양을 올리러 내려갈 때까지 모든 것들이 그냥 고요했다. 그는 우릴 훈련시켰던 듯하다. 고요의 훈련.
 
  줌토르는 그의 저서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말한다. ‘본질이 아닌 것들을 찬미하는 사회 속에서 건축은 의미와 형태의 낭비에 대항하며 그 자신의 언어를 이야기해야한다‘ 떼르므 온천에서 나는 그의 언어를 들었다. 절제된 단호함 그리고 고요함.
 
  Therme 호텔 투숙객들은 6코스 요리를 제공받는데 요리 하나가 나올 때마다 그 요리를 만든 젊은 요리사가 다가와 자분자분 설명을 해준다. 끝에 가서는 음식이 어땠느냐고 물어본다. ‘제어 구트‘ (아주 좋다)라는 독일어를 써먹으니 좋아한다.경쟁력 있어 보이는 당당한 요리사들은 몇 개국어는 하는듯 했다.
 
지정해준 자리에 앉은 식당 분위기가 어찌나 차분하고 조용한지 쫒기 듯 후다닥 먹고 일어서던, 시끌시끌하고 정이 많은 나라에서 온 내가 진땀을 뺄 정도였으니. 내게 이런 관광은 아직 어색하다.
  
텔레비전이 없는 호텔도 어색하다. 텔레비전과 휴대폰, 본질이 아닌 것들을 찬미하는 사회에서 줌토르의 건축이 말하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쉿, 너무 떠들지 마라.
 
 
[2009년 11월 23일(월요일) 창간호 25면]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