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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회우정에서

 
 
 
오민경.jpg
 
내려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뿌옇다. 춘삼월이라고, 집만 지어놓으면 뭐하냐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해서 별러서 오랜만에 내려온 남편의 고향이다.
 
회우정은 관록이 붙어간다. 배흘림기둥도 그렇고 悔宇亭 현판이 그렇다. 아무리 살그머니 도착해도 마을사람들은 다 안다.
 
자동차가 보이니 그렇고, 밤엔 집에 불을 환하게 켜놓으니 그렇다. 그리고는 하나둘 우리 집으로 모여든다. 막걸리를 들고 오기도하고 돼지고기 삶은걸 들고 오기도 한다.
 
“왔능가?”, “예,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별일 있을끼 뭐 있나, 오느라고 고생 많았제?”, “아입니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들어서면서 나는 저녁준비에 바쁘다. 아차, 김치를 서울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져오는 걸 잊었네. 냉장고와 관련된 이런 경우는 허다해서 어떤 때는 현관 문고리에 ‘냉장고’라고 메모를 써 붙여 두었었다. 이번엔 써 놓는다는것 자체를 잊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이상하게도 공기가 상쾌하지 않았고 따라서 기분이 가라앉는다. 곰팡내 나는 이불을 널었다가 다시 걷어드렸다. 앞으로 우리의 하늘은 계속 이럴 것인가? 회의가 들었다. 공기가 이토록 기분에 영향을 줄 줄이야...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래도 시골에 내려왔다고 하면 남들은 ‘그곳은 공기가 맑지요?’ 한다. 가을이와 논두렁을 다니며 농약플라스틱 병을 수거했다. 플라스틱 막걸리병 등 이것저것 담아보니 꽤 많다.
 
“그걸 어디서 다 모았노?” 법산댁 놀란다. “바로 이 자리에서요, 할머니,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이런 플라스틱 페트병들을 태우면 안되요. 그 나쁜 공기가 하늘로 올라가 다시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대요” “알았다. 이제 안태울게” “내 아들이 막걸리 마시고는 아궁이에 넣능기라”.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막걸리통이 즐비하다. 몽땅 걷어냈다. 홀아비인 그 아들은 농촌을 지키지만 딱하게도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 마시고난 막걸리통을 논밭 아무대나 던진다.오십대 남자가 팔순인 어머니와 둘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이 마을에 괜찮은 젊은이가 있어 조찬에 초대했다. 유기농에 관심 있는 종철씨 의견을 들어보니 농약을 안치는 농사꾼이 거의 없단다. 마구 쓰는 제초제가 말하자면 고엽제가 아니냐며 안타까워한다. 조상 산소 잔디를 곱게 하느라, 골프장 잔디를 볼품 있게 만드느라,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제초제가 사용될까?
 
종철씨는 유기농 농사를 짓다가 수지타산이 안 맞자 그만두고 골프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반지르르 잘생기고 먹음직스러운 과일은 특히 더 나쁘단다.그런데도 젊은 여자들은 왜 그리 무지스러운지 자기 여동생도 반지르르한 과일만 좋아한단다. 자기가 농사지은걸 갖다 주면 푸대접한단다.
 
다음날 점심은 7명. 불고기에다 법산댁네 김치로 상을 차렸다. 이 마을이 원불교 성주 성지라서 제법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성지를 지키는 김원명 교무는 상록수의 심훈을 연상시키는 남자다. 그는 초전면에 헌 축사에다 교당을 세웠다. 새로 변신한 축사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축사교당 옆에는 자그마한 황토방을 지어놓았다.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건축, 알뜰한 건축이다. 노동으로 굵어진 그의 손을 보면 요즈음 인터넷시대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태양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남자가 이 시대에 있다는것, 사회관광이라도 와야 할 판이다.
 
그가 지어놓은 새 교당을 안내했다.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상록수의 심훈에게서 커피대접을 받고 집에 오니 “계십니까?”, “어서오세요” 뒤깨댁이 뒤뚱거리며 보따리를 들고 들어선다. 뒤깨라는 마을에서 시집오셔서 팔순이 다 된 지금에도이름이 뒤깨댁이다.
 
된장 한 병과 매실청 무 당근 보따리를 풀었다. 땀으로 이룬 작품을 내게 주시다니 도시에서 온 내가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이 뻔뻔스런 도시인은 며칠 이 마을에서 보내며 비판만 하다가 훌쩍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법산댁은 플라스틱 병들을 땔감으로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인가?
 
[2013년 4월25일 제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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